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지막 네오 Feb 04. 2023

나만 아니면 돼!

어긋난 항해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2022)

√ 스포일러가 엄청납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제목 : 러브, 데스+로봇 시즌3 중에서
   어긋난 항해(Bad Travelling)

크리에이터 : 팀 밀러, 데이비드 핀처, 제니퍼 밀러, 조시 도넌
제공 :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년도 : 2022년, 총 9화 완결
장르 : SF, 스릴러, 호러
등급 : 성인용

시즌 3의 두 번째 에피소드 <어긋난 항해>는 매우 사실적인 작화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식인 바다괴물과 달아날 곳 없는 선박이라는 공포와 폐쇄된 공간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인간 군상을 심리적 추측과 강렬한 비주얼을 통해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작품은 먼 옛날, 외진 바다로 ‘제이블 상어’를 사냥하러 떠났던 배 중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배도 있었다는 소개 글과 함께 시작된다.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하던 범선 위로 갑자기 거대한 게 모습의 바다 괴물 ‘타나팟’이 기어오른다. 선원들은 타나팟에 대항해 보지만, 타나팟의 가공할 힘에 밀려 ‘가윗날 앞의 종이’ 신세다.

타나팟은 순식간에 갑판 위를 휩쓸더니 이내 커다란 구멍을 통해 배의 아래쪽 창고로 숨어든다.


선원들은 타나팟이 배가 고프면 갑판 위로 다시 출몰할 것을 예상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희생양을 제비뽑기 하기로 한다. 침착하고 냉정한 성격의 토린은 공정한 방법으로 제안했지만, 희생양으로 뽑힌 거구는 육체적인 우월함을 앞세워 스스로 지도자로 뽑혔다고 말한다. 그리고 희생양으로 토린을 지명한다. 다른 선원들은 침묵으로 조용히 동조한다.


결국 힘에 밀린 토린은 어쩔 수 없이 창고로 내려간다. 타나팟이 달려들자 겨우 피한 토린. 그런데 뜻밖에도 타나팟은 죽은 시신을 이용해 토린에게 말을 건다. 토린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침착하게 타나팟과 협상한다.

타나팟은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섬 페이든으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요구하고, 토린은 자신만은 죽이지 말 것을 요청한다.


어쨌든 살아 돌아온 토린은 타나팟에게서 돌려받은 총기함 열쇠 덕분에 권총을 획득하게 되고, 권력 서열은 순식간에 다시 뒤바뀐다.

문제는 당장 타나팟에게 바쳐야 할 첫 희생양을 정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1순위 희생자는 거구가 된다. 이때도 선원들은 강자가 된 토린의 독단적 결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토린은 나름 아이디어를 내서 페이든 섬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그 결정을 투표에 붙인다. 토린은 투표 결과를 빌미로 멀리스 형제를 처단한다.

그러나 선원들 사이에서는 권력을 가진 토린을 경계하여 그를 살해하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또한 타나팟이 페이든 섬으로 향하려는 목적도 알게 된다. 그것은 수백 마리의 새끼가 부화했기 때문이었다.


멀리 페이든 섬이 보일 즈음, 토린은 가까워지면 깨우라며 잠을 청한다. 하지만 그것은 영리한 토린이 나머지 선원들을 시험해 보기 위한 수단이었다. 토린의 침실에 침입해 집단 린치를 가하던 선원들은 토린의 총구 앞에 하나둘 쓰러져 간다. 숨어있던 영감까지 선원 모두를 타나팟에게 던져준 토린은 이번에는 창고로 걸어 내려간다.


ⒸNetflix


토린은 창고 안에 있던 기름을 이용해 불을 지른다. 거대한 덩치의 타나팟과 새끼들은 모두 범선과 함께 불길에 휩싸인다. 토린은 가까스로 배를 탈출해 준비해 놓았던 작은 보트를 타고 섬을 향해 나아간다.


얼마 전에 썼던 영화 감상 후기 <F20>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을 생존과 관련해서 서술한 적이 있다. 그 부분을 다시 인용해 본다.


“맹수 앞에 두 사람이 던져졌다고 가정해 보자.
 ‘나와 너’는 누가 먼저 맹수에게 당하길 바랄까?”


위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아닌 타인이 필요하다는 말도 될 수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화두를 이렇게 금방 다시 언급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에피소드 <어긋난 항해>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답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에피소드 <어긋난 항해>는 내가 이전 글에서 던졌던 질문을 더욱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영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개인 이기주의, ‘우리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 즉,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특히 어떤 위협 앞에 놓였을 때, 그런 특성은 가감 없이 추악하게 드러난다.


토린은 첫 위기 앞에 놓였을 때, 이미 다른 선원들에게 실망한다. 그리고 페이든 섬 주민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을 때 역시 모두에게 실망한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할 때, 인간은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말장난 같은 이 말은 진실이다.


현재의 인간은 작게는 가족으로 시작해 사회를 이루고, 나아가 국가 또는 그 이상의 연합을 결성한다.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국가 개념에서 벌이는 전쟁, 정치, 외교 측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냉혹한 상황은 <어긋난 항해>의 범선에서 벌어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규모를 조금 줄여도 마찬가지다. 사회, 가족 단위로 줄인다고 해도 폭력과 폭압으로 얼룩진 현실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렇게 우리의 현실은 결코 무지개 걸린 아름다운 동산이 아니다. 갈등, 대립, 분열, 계급 다툼, 권력 다툼, 정치적 다툼 등, 끝이 없다.


그 기저에는 ‘밥그릇’이 걸려있다. 생존과 경쟁은 같은 뜻의 단어가 되어버렸고, 아니라고 부정해 봐도 이미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토린이 애초에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모두에게 복수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듯이, 악의는 선악과 상관없던 존재를 악으로 만든다.

다시 이전에 썼던 글을 인용하여 질문을 던져본다.


“맹수 앞에 두 사람이 던져졌다.
 ‘엄마와 아들’은 누가 먼저 맹수에게 당하길 바랄까?
 이전 예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생각할 것이다.
왜, 무엇이 다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해답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이 멸망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