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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Feb 05. 2023

자연, 인간, 기계 그리고 생명의 경계

강렬한 기계의 진동을 2/2 -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2022)

√ 스포일러가 엄청납니다. 원치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제목 : 러브, 데스+로봇 시즌3 중에서
   강렬한 기계의 진동을(The very Pulse of the Machine)

크리에이터 : 팀 밀러, 데이비드 핀처, 제니퍼 밀러, 조시 도넌
제공 :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년도 : 2022년, 총 9화 완결
장르 : SF, 스릴러, 호러
등급 : 성인용

특히 이 작품은 여러 시(詩)를 인용하고 있다.


첫 사고 장면에서 잠깐 화면에 잡히는 책 <옛 지구의 시(Poems of Old Earth)>가 있다. 저자로 ‘Machel Swanwick’이라는 이름이 적혀있는데, 사실 이 책의 원제목은 ‘Poems of Old Earth’가 아니라 「Tales of old earth」이다. 이 책은 실재하는 책이며, 현재 인터넷서점 ‘YES24’에서도 판매 중이다(2023.02.03. 현재).


또한 미국의 SF 작가 ‘마이클 스완윅(Machel Swanwick)’은 「The very Pulse of the Machine」(1998)이라는 소설을 쓴 사람이다. 이 소설이 바로 본 애니메이션의 원작이다.


ⒸNetflix


키블슨이 모르핀을 투여하자 환청처럼 들려오는 이오의 목소리에서도 여러 시를 부분 인용하고 있다.


먼저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사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의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이다.


“오, 잠이여! 그 온화한 상태를 온 세상이 사랑하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키블슨에게 딱 어울리는 구절이다.


다음으로 미국의 시인 바바라 에스벤슨(Barbara Juster Esbensen, 1925~1996)의  ‘The milky way’는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누가 이 별들을 하늘에 가로질러 쏟았는가?
마치 반짝이는 먼지처럼, 빛의 구름처럼
검고 깊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은빛 자취를 남긴다.”


외국 시인의 시는 번역하는 사람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다. 자막으로 번역된 것이라 얼마나 표현에 충실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있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고 왔다.

낭만적인 밤하늘을 그려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이오는 키블슨과 소통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미국의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79~1955)의 ‘Tea at the Palaz of Hoon’의 한 구절이 나온다.


“내가 발 디딘 세상은 바로 나 자신이었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감정은 전부 나에게서 왔다.”


마치 이후 이어질 이야기를 암시하는 구절 같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She was a phantom of delight’와 ‘The prelude’를 인용하고 있다. 먼저 ‘She was a phantom of delight’에서는 이렇게 인용했다.


“이제야 나는 평화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강렬한 기계의 진동을”


여기에서 ‘강렬한 기계의 진동’을 풀자면, ‘진동’은 생명체의 심장 박동을 뜻한다. 무생물인 기계의 ‘강렬한 진동’이란, 바로 위성 ‘이오’가 무생물 단계를 넘어 살아있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용한 ‘The prelude’는 원작은 상당히 긴 시였지만, 다음과 같이 짧게 인용했다.


“마음의 가장 단단한 지표는
영원히 영겁의 낯선 생각 속을 항해한다. 홀로…”


[참고 및 출처 : https://www.poetryfoundation.org/]


ⒸNetflix


이 작품에서, 이오가 원하는 것은 인간 정신과 합일하는 것이다.

뇌가 완전하게 파괴된 상태가 아닌 버턴을 일으켜 합일을 유도했고, 달리 선택지가 남지 않게 된 키블슨에게도 육체는 사라지지만 정신을 보존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설득한다.


마지막에 키블슨은 묻는다.

“네가 기계라면 네 기능은 무엇이지?”


그에 이오가 대답한다.

“너를 아는 것”     


그동안 <러브, 데스+로봇> 시리즈에서 주로 다루었던 ‘영생’을 언급하기도 하고, ‘인간 정신의 전자화’를 통한 삶의 연장과 같은 의미로 풀어볼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하나의 개체로서 그대로 전이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인 A.I와 합일한다는 점이 다르다.


상대를 ‘안다는 것’은 상대와 합일하면 정말 가능해지는 걸까? 번갯불처럼 질문이 머리에서 번쩍한다.

‘기능’이라고 표현한 것도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육체 없는 정신만의 영원한 삶이라…

아, 상상을 시도하려니 머리칼부터 우수수 빠진다.


일단 이 작품은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철학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통한 교감과 치유를 말했다.

위성인 이오를 살아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거기에 더해 인간을 포용할 수 있는 자연으로 표현했다.


ⒸNetflix


이쯤에서 생각해 볼 문제 하나는 기계(A.I)가 스스로 생겨난 자연이 아니라 인공의 산물이라면, 그것이 하나의 행성이나 위성의 규모일 경우에 자연으로 봐야 할 것인가이다.

미래에 사람의 육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듯이, 지구 단위의 영혼도 기계(A.I)를 통해 대체할 수 있다는 가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기계로서의 자연은 기계적 특성인 ‘기능’을 가졌다. 그 기능이란 인간 정신과 합일하여 인간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단순히 지구에서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원리를 전자적 방식으로 빗댄 것일까?


아니, 조금 다른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오와 일체화된 키블슨이 지구국을 호출하는 장면에선 왠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과학의 발전, 그 끝단에서 인간은 과학으로 생겨난 새로운 존재와 어떻게 공존해 갈까?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참고해 생각해 보면, 그리 썩 좋은 미래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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