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봄여름가을겨울’
나에게는 음악이 좋은 것과 가수(사람)를 좋아하는 것은 별개의 좋아함이다. 음악이 좋다고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됨됨이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서정적인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런 음악을 만든 사람은 마음도 참 아름다운 사람이겠구나’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많은 한국의 대중가요는 작곡가의 고뇌를 통해 곡이 만들어지기보다 무대와 대중에게 선보일 목적으로, 대중이 좋아할 만한 점을 극대화하여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말은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헤어지긴 정말로 싫어>와 같은 곡이다.
이쯤에서 내가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에 푹 빠진 이유 중 하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방금 얘기한 대로 대중적인 인기에 편승하기 위한 상품으로의 음악이 아니라, 뮤지션 본인의 느낌을 그대로 담아낸 진솔한 음악을 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헤어지긴 정말로 싫어>의 경우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작사와 작곡을 한 김종진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해 본다. 왜냐하면 이 곡을 들으면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이의 아쉬움이 노랫말에서도, 멜로디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88 서울올림픽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다.
88 서울올림픽이 1988년 9월 17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에 개최되었고, 당시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전인 6월.
가요계는 호소력 짙은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을 비롯해 그룹 사랑과 평화의 <울고 싶어라>, 여운의 <홀로 된 사랑>, 이지연의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작품하나의 <난 아직도 널>, 석미경의 <물안개>,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 등이 가요 순위를 채우고 있던 시절이다.
가요 순위를 채우고 있던 위의 곡들도 좋아했지만, 6월 중순경 발표된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 타이틀 곡인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를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을 때, 음악을 듣는 방식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 흥얼거리며 듣는 음악에서, 말 그대로 들으면서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내는 음악으로 바뀐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까지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저 새롭지만 어딘가 어둡고 쓸쓸한 느낌이 나는, 그래서 낭만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또 다른 인기에 편승하기 위한 대중가요의 하나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내가 걷는 길>과 <거리의 악사>를 듣게 된다. 어디에서 어떤 매체를 통해서 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충격적인 놀라움을 경험한 기억은 또렷하다. 이건 음악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내 귓가에 대고 누군가 자기의 감정 그대로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내가 걷는 길>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 듣는 감각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로, 나뭇잎에 맺혀있던 이슬방울이 떨어져 내리듯 나의 감정을 이끌었다.
– 김종진 작사/작곡
때론 바쁜 하루 일과를 등 뒤로 돌리고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기다가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다보면은
코끝이 찡한 것을 느끼지
하루 이틀 사흘 지나고 문득 뒤돌아보면
가슴 아픈 일들도 즐거운 추억도
빛바랜 사진처럼 옅어만 가고
짙은 향수만을 느낄 뿐이야
거리의 네온이 반짝거리듯
잠깐 동안 눈앞에 떠올라
거리의 바람이 스쳐 지나듯
이내 가슴에 사라져 버리는
오~ 내가 지금껏 걸어온 이 길은
흩어진 발자욱만 가득하고
오~ 내가 이제 걸어갈 저 길은
텅 빈 고독으로 가득하네
때론 바쁜 하루 일과를 등 뒤로 돌리고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기다가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다보면은
코끝이 찡한 것을 느끼지
거리의 네온이 반짝거리듯
잠깐 동안 눈앞에 떠올라
거리의 바람이 스쳐 지나듯
이내 가슴에 사라져 버리는
오~ 내가 지금껏 걸어온 이 길은
흩어진 발자욱만 가득하고
오~ 내가 이제 걸어갈 저 길은
텅 빈 고독으로 가득하네
하루 이틀 사흘 지나고 문득 뒤돌아보면
가슴 아픈 일들도 즐거운 추억도
빛바랜 사진처럼 옅어만 가고
짙은 향수만을 느낄 뿐이야
짙은 향수만을 느낄 뿐이야
내가 걸어온 이 길은
짙은 향수만을 느낄 뿐이야
흩어진 발자욱만 가득하고
짙은 향수만을 느낄 뿐이야
내가 걸어갈 저 길은
짙은 향수만을 느낄 뿐이야
텅 빈 고독으로 가득하네
짙은 향수만을 느낄 뿐이야
산동네에 살던 시절,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선들선들 바람이 불어왔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 창공으로 흩어지면 그 흩뿌림 끝 먼 하늘에는 붉은색, 보라색 창연한 빛깔이 아름답게 흘러내렸다. 그때의 그 바람과 하늘이 이 곡을 들을 때면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이내 일렁거린다. 그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적인 느낌은 어찌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거리의 악사>의 경우에는 놀라움에 더해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준 곡이기도 하다. 맨 처음 들었을 때는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햐~ 기가 막힌 연주 솜씨구나’하고 지나쳤다. 그 당시에는 제목도 모르고 누구 곡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것이다. 아마도 길거리 음악사에서 틀어놓은 것을 길 가다가 멈춰 서서 한참 고개를 까딱거리며 들었던 것 같다. 한창 혈기왕성했던 시절이라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도 누구 시선 의식하지 않고 몸뚱이를 꿀렁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하도 궁금해서 용기 내어 음악사에 들어가 물어봤다.
“지금 밖에 틀어놓은 음악, 저거 누구 곡이에요?”
그런데 하필 가게 사장님은 자리를 비우고 대학생쯤 보이는 여자 점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터였다. 턴테이블에 걸려있던 앨범의 표지를 뒤적거리더니
“이거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그룹의 <거리의 악사>라는 곡이네요”
한다. 내가 다시
“봄여름가을겨울이요?”
하고 되묻자, 그분은 친절한 웃음을 보이며
“요즘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라는 그 노래 부른 가수예요.”
한다. 순간 뒤통수를 땅 맞은 느낌이었다. 센세이션(Sensation)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외국 사람이 작곡한 거 아니에요?”
“음… 아닌데요. 여기 앨범에는 김종진 작곡으로 되어 있네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가 올림픽이 끝난 후인지 더 지나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더운 여름이었던 게 기억난다. 나는 무슨 결단이 섰던 것인지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가 저금통을 깨트렸다. 가진 돈을 다 털어 바로 음악사로 다시 달려갔다. 땀에 흠뻑 젖어 노란 LP판 앨범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앞뒤로 돌려보며 뿌듯한 행복을 느꼈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그 당시 우리 집에는 턴테이블이 없었다는 점이다.
- 김종진 작곡
(#4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