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빛과 어둠의 역사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by 마지막 네오

05. 빛과 어둠의 역사


앞서 밝힌 것처럼 음악과 음악을 만든 사람은 별개다. 음악은 음악이고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대중가수나 스타를 직접 만나서 그의 생각이나 살아온 소소한 이야기를 다 들을 수도 없고, 그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 알 길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보통 어떤 사람의 글을 접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대충 알 수 있듯이 음악에 그 사람의 철학이 보인다면 조금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작곡한 곡을 받아 부르기만 하는 가수보다는 싱어송라이터(곡을 만들고 부르는 사람)의 곡,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이 만든 곡을 자신이 부르는 사람은 그 사람과 음악을 별개로 놓고 생각할 수만을 없을 것이다.


“한국 퓨전음악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김현식과 대면하게 된다. 1980년 광주, 그리고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우리 정치사와 대중음악사의 비극과 희망의 연대기를 막 기술하기 시작할 무렵 김현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저주받은 걸작을 안고 데뷔의 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고, 그는 두 번째 앨범을 낼 때까지 5년간을 침묵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사랑했어요>를 담은 2집과 <비처럼 음악처럼>을 내세운 3집을 연속적으로 성공시키며 언더그라운드의 맹주로 부상하면서 음악 후배들로 구성됐던 그의 백 밴드에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통한의 이름을 붙였다. 그중의 두 구성원인 김종진과 전태관이 그 이름을 안고 독립해 1980년대 말 퓨전 밴드의 기수가 됐음은 한국 대중음악에 조금만 관심 있는 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략)… 나는 데뷔 시절부터 베테랑이 된 2000년대 이후의 뜨거웠고 화려했던 이들의 무대를 존중한다. 거기엔 진솔한 음악인이, 진짜의 사운드가, 진정한 음악이 흘렀다. 트렌드의 변천과 함께 이들이 스타덤의 뒤꼍으로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쇼 비즈니스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오른 이들의 표정이 어두웠던 적은 없다. 수많은 이합집산으로 어지러운 밴드계에서 이들은 변치 않고 반세기 가까운 음악적 우정을 쌓았으며 그 연대감은 보는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출처 : 강헌 음악평론가, 「시사저널」, 2019년 1월호, pp.88~89.)


옛 잡지의 글을 인용하다 보니 좀 긴 내용이다.

위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시작은 가수 김현식의 백밴드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김종진과 전태관을 비롯해 유재하와 장기호 네 사람이 1986년에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방배동의 ‘파블로’라는 공간에서 이미 친한 사이였던 그들은 김현식을 구심점으로 모였다. 그러나 오해인지 진실인지는 알 길은 없으나 김현식과 유재하 사이에 곡 선곡과 관련해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전태관과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유재하가 밴드에서 탈퇴하여 독립하고, 그의 빈자리는 장기호의 초등학교 동창인 박성식이 합류하게 된다.

이런 소소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알기 어려운데, 고맙게도 김종진과 전태관이 한 예능 방송에 출연해 직접 증언한 내용이 있다.


[<라디오스타> 11월이 되면 어김없이 그리워지는 가수, 故 김현식 추모 특집, 2020년 1월 20일]


아무튼 국내에서 다시는 보기 힘든 연주력과 음악적 재능을 가진 슈퍼 세션의 탄생이었다. 1986년 12월 5일 발매된 <김현식 3집> 앨범은 나의 미천한 귀에도 들려왔다.


내가 김현식이라는 걸출한 보컬을 처음 알게 된 것도 바로 <김현식 3집> 앨범 때문이다. 이 앨범에는 정말이지 단 한 곡도! 단 한 곡도 버릴 곡이 없는 불후의 명작이다.

나의 경우에는 큰마음을 먹고 처음으로 정품 테이프를 구해서 듣기도 했다. 테이프가 다 늘어나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때까지 듣고 들었던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유재하가 쓴 <가리워진 길>도 들어있고, 김종진이 쓴 <쓸쓸한 오후>도 있으며, <비처럼 음악처럼>도 이 앨범에 들어있다. 김현식에 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한번 다루기로 하고 다시 [봄여름가을겨울] 이야기로 돌아간다.


[봄여름가을겨울]을 소개하는 글이지만 사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도 김현식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명작을 완성한 지 얼마나 됐다고… 1987년, 김현식이 대마초 사건으로 모든 활동을 중지하게 된다.


<1987년 10월 30일 자 경향신문> 뉴스를 근거로 설명하면, 그룹 [들국화]의 전인권과 허성욱, 김현식, 그룹 [사랑과 평화]의 전 리드싱어인 이철호 등 연예인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다. 이에 따라 [봄여름가을겨울]도 멈춰 선다.


엎친 데 덮친다고 할까. 홀로 독립했던 유재하가 1987년 11월 1일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유재하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나온 천재 뮤지션으로, 각종 악기에 능통할뿐더러 천재적인 작곡 실력을 보유한 천재였다. 덕분에 1984년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했고, 조용필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을 주기도 했다. 그 곡이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인데, 1985년 4월 발매한 <조용필 7집> 앨범에는 웬일인지 양인자 작사, 조용필 작곡으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조용필이 가왕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유재하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불러진 <사랑하기 때문에>에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독립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을 낼 때 모든 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해서 불렀다.


[서울음반]을 통해 1987년 발표한 유재하의 첫 앨범이자 유일한 이 앨범은 악기 편성, 리듬, 코드 진행, 형식, 편곡, 노래, 앨범의 콘셉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유재하 본인이 맡았다. 또한 유재하의 유일한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은 실제 자신의 연인을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재하는 비운의 천재였다. 유재하의 앨범은 그가 살아있을 때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TV 출연을 금지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기존의 가요계에 뿌리 박혀있는 기득권에 의해 새로운 음악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유재하의 사망 당시 신문에 사망 관련 기사조차 찾기 어려웠으니, 그렇게 그냥 무명으로 묻혀가는가 했다. 그러다가 유재하가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동료들이 추모사업회를 결성하고 그를 기리면서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그의 노래가 다시 흘러나오면서다.

예를 들어 당시 이문세가 진행하던 최고의 인기 음악방송이던 MBC 라디오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가요 순위를 선정하는 ‘별밤 차트’ 코너에서는 유재하의 <지난날>이 장기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요즘 말로 ‘역주행’이라 할 수 있는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1988년 4월 자 일간지 뉴스에 유재하의 유작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조선일보, 1988년 4월 9일, 8면>.


이 저주는 유재하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정확하게 3년 후인 1990년 11월 1일 33세의 나이로 불세출의 보컬 김현식도 유재하의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은 죽은 날짜까지 같다.


(#6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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