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봄여름가을겨울’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였던 장기호와 박성식은 밴드를 떠나 [사랑과 평화]에 영입되어 활동하다가 1990년, 2인조 밴드 [빛과 소금]을 결성한다. 남은 김종진과 전태관은 1988년부터 밴드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2인조로 거듭나 지금의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1988년 6월 15일, 발표한 앨범이 바로 <봄여름가을겨울> 1집 앨범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 앨범은 기존 대중음악에서 볼 수 없었던 형태인 앨범 내에 3곡의 연주곡을 수록했다.
이 3곡의 연주곡의 의미는 크다. 기존 국내 가요계에 없었던 형식적 시도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의미는 새로운 음악의 대중화라는 점이다.
개성을 잃은 발라드나 기교 위주의 댄스곡이 주류를 차지하던 가요계에 ‘퓨전재즈’라는 생소한 음악을 들이밀었다. 상업적인 모험이기도 했다. 연주곡이 3곡이나 들어있는 앨범을 누가 가수의 앨범으로 보고 구매할까? 가수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고 연주는 연주자들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엔 그랬다.
다행히 그들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1집의 타이틀 곡인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가 대중을 흔들어놓았고, 덩달아 <거리의 악사>와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같은 연주곡도 찬사를 받았다.
이 첫 앨범의 성공은 의미가 남다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건조한 우리 가요계에 새로운 음악적 확장을 가져오면서 불쏘시개 역할을 했으며, 이후 한국 대중음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봄여름가을겨울]은 1집의 성공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간다. 그리하여 탄생한 앨범이 <김현식 3집>에 버금가는 명작 [봄여름가을겨울] 2집 앨범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이다.
[봄여름가을겨울] 2집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1989/동아기획)
김종진(기타, 보컬), 전태관(드럼)
세션 : 송홍섭(베이스 기타), 김효국(키보드), 최태완(키보드), 김원용(색소폰)
이 앨범은 1989년 10월 1일에 발매되었다. 2집 앨범에도 1집 때처럼 총 3곡의 연주곡이 들어있다. 1집 때보다 더욱 세밀하고 세련된 연주가 돋보인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훌쩍 성장한 의식이 엿보인다. 각 곡에는 기억, 추억,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있다.
낮고 둔탁하며 더 굵어진 김종진의 보컬에는 때로 음유시인의 감성이 묻어나면서,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관조적인 태도와 쓸쓸함에 대한 회환도 느낄 수 있다.
총 10곡의 수록곡 중에서 3곡의 연주곡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첫 곡은 연주곡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이다. 故 전태관의 수준 높은 드럼 비트가 음악 전체를 이끌며 김종진의 기타 멜로디와 멋진 앙상블을 이루는 곡이다.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으로 시작해서 두 번째 곡인 <어떤이의 꿈>까지 내리 한 번에 내달리는 연주는 흐름의 끊김이 없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노래 가사가 없는 연주곡은 언어나 문자가 주는 명시성보다 그와는 다른 모호하고 추상적인 성격 덕분에 듣는 이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효과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한 곡의 음악을 들어도 들을 때마다 달리 해석되는 묘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두 번째 곡인 <어떤이의 꿈>은 1집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곡이다. 그래서 곡에 대한 평을 생략해도 될 것으로 생각된다.
여섯 번째 트랙에 들어있는 <그대 별이 지는 밤으로>는 개인적으로 인생 타이틀 곡으로 꼽는다. 불면의 밤을 수없이 보낸 사람으로서 이 음악에 흐르는 감성은 내 마음을 너무나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색소폰 음색과 이어지는 기타의 멜로디는 달빛 아래 흐르는 쓸쓸한 공기를 흡입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로등이 듬성듬성 켜진 새벽 거리에 사람 없는 길가를 걷다 보면 휘영청 떠 있는 달빛과 가슴을 스치는 바람결이 음표가 되어 날아든다.
쓸쓸하지만 외롭지는 않고, 혼자이지만 낭만적인…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적인 느낌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하면 믿을 텐가? 여기 그런 음악이 있다.
이어지는 <못다한 내 마음을>은 그런 낭만적인 쾌락을 여지없이 슬픔으로 휘몰아 넣는 곡이다.
사랑했던 옛 기억을 함부로 끄집어내어 가슴팍에 사정없이 던져 넣는다. 그 시절 불던 바람과 주변 공기의 흐름마저 애절한 기타 선율을 타고 간다. 사랑했던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으며 돌아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달빛은 하염없이 밝고 걷는 걸음마다 야속함이 맺는다.
기타와 키보드로 이어지는 멜로디는 안갯속을 걷고 있는 나를 멀리서 바라보게 한다. 그의 마음속을 후비는 냉혹함이 온통 아름다운 핏빛 물방울을 뿌리며 휘몰아친다.
연주곡 <못다한 내 마음을>은 이제껏 들어본 연주곡의 드라마틱함과는 사뭇 다르다. 인조의 냄새가 없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회포라고나 할까,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다르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곡을 들은 후로 인간 김종진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7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