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찬란했던 청춘을 보내며

그룹 ‘봄여름가을겨울’

by 마지막 네오

07. 찬란했던 청춘을 보내며


때론 어떤 음악이나 미술 작품 혹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짧은 시간에 인생 전체를 관통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살아가는 것을 두고 보통 길을 걸어가는 것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로드무비의 다양성에 감탄하며 그 과정이나 사건을 삶에 빗대어보곤 한다. 영화에 로드무비가 있다면 이들의 음악을 ‘로드 뮤직’이라고 부르고 싶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는 문자로 기록하자면 단어 몇 개로 끝날 일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음악은 그 엄청난 산맥을 모래성처럼 눈앞에 보여주기도 한다.


걸어가는 것, 그 안에는 사색이 있다. 만나고 헤어진 모든 인연에 대한 사색부터 자기 내면에 비추어낸 세상에 대한 사색이 있다. 길을 걷는다는 건, 길 자체의 시작과 끝남보다도, 어찌 보면 그 길을 걷는 동안 경험하는 사색 때문에 의미가 깊어지는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이 태어남과 죽음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살아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겪는 갖가지 감정과 생각이 더 중요하듯이 말이다.


[봄여름가을겨울] 2집은 아직 정립되지 못한 그런 철학적 질문의 초입에 서 있는 앨범 같다. 김현식 3집 앨범에 헌정했던 <쓸쓸한 오후>는 김현식의 곡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수록됐다. 마치 김종진이 김현식을 생각하며 추도하는 느낌마저 든다.

색소폰으로 길게 뽑은 초입부의 멜로디는 쓸쓸하고 고독하다.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관조적인 쓸쓸함은 원곡자인 김종진이 그린 느낌을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쓸쓸한 오후

– 김종진 작사/작곡

비 오는 날 플랫폼에서
그대 떠나보내고
비 오는 마음 창가에 홀로 앉아
아쉬움 달래 보네
눈처럼 하얀 손가락
맑은 눈동자 고운 그 마음 같네.
지금은 텅 빈 마음과
슬픈 추억들 고독만 남았네.
으음 쓸쓸한 오후였네.
쓸쓸한 오후였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은 한 곡을 다 들은 후에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남긴다. 멜로디에 이야기가 스며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음악적 감성은 처음 들었을 때 번쩍 귀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깊은 고민과 내면을 이야기한 책일수록 쉽게 읽히지 않는 것처럼, 이들의 음악도 쉬운 가사 말과는 달리 지루하고 더딘 흐름으로 느껴지면서 금방 다가서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다시 들으면 들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봄여름가을겨울]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에서 유일하게 김현식이 작사, 작곡한 곡인 <봄여름가을겨울>은 김현식과 김종진을 비롯한 멤버들이 가장 좋아했다는 곡이다. 오죽했으면 그룹 이름을 [봄여름가을겨울]이라고 지었겠나.

신중현 님이 만들고 부르기도 했지만, 이선희가 리메이크해서 더욱 유명해진 <아름다운 우리 강산>도 명곡이지만,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은 그에 못지않은 명곡이다.


나머지 트랙을 차지하고 있는 <내 품에 안기어>와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 <열일곱 그리고 스물넷>, <사랑해(오직 그대만)>는 딱 김종진 스타일의 곡들이다.

어둑한 느낌의 멜로디와 무거운 음색으로 모진 그리움과 아쉬움을 노래하기도 하고, 속절없이 순수한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를 밝고 경쾌하게 노래하기도 했다.


1962년생인 김종진과 전태관은 그렇게 찬란한 청춘을 보냈다. 이제 20대를 지나 30대로 접어들면서 꿈꿔 왔던 음악적 도전을 이어간다. 먼저 우리나라 최초로 라이브 실황을 앨범으로 발매한다.


1991년에 발표한 라이브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Live」는 1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면서 말 그대로 전설적인 앨범으로 남았다. 다른 앨범에서는 들을 수 없는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와 <가을이야>라는 곡도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Live (1991/동아기획)
김종진(기타, 보컬), 전태관(드럼)
세션 : 강기영(베이스 기타), 송재준(키보드), 황수권(키보드), 박청귀(기타), 김민기(퍼커션), 김원용(색소폰)


연이은 성공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좀 더 완벽한 음악적 성과를 위해 다시 투자된 것 같다. 이어진 [봄여름가을겨울] 3집 앨범인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과 4집 「I Photograph to Remember」는 앨범 전 과정을 미국의 현지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국내 가수로서는 최초다. 또한 3집 앨범의 경우, 친분이 있던 사진작가 김중만 님이 촬영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을 앨범 속지에 활용하여, 앨범 자체를 고급스러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3집은 1992년 1월에, 4집 앨범은 1993년 6월에 발표했다.


[봄여름가을겨울] 3집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1992/동아기획)
김종진(기타, 보컬), 전태관(드럼)
세션 : Paul D. Mariconda(키보드), Jeff Ganz(베이스 기타), Paul Adamy(베이스 기타), Lenny Pickett(색소폰), Andy Snitzer(색소폰), Joe Bonadio(퍼커션), Al Orlo(기타)
미국 뉴욕 에크미(ACME) 스튜디오


3집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앨범부터는 김종진 스타일의 자유롭고 색깔이 뚜렷한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애초에 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뮤지션들이 모두 미국과 유럽의 음악인들이고, 음악적인 색채도 그렇다. 그렇기에 3집의 첫 연주곡에 해당하는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은 기존의 곡들에 비해 힘이 느껴지고, 상당히 도시적인 감성의 멜로디가 주를 이룬다. 더욱 세련되고 정교한 연주와 눈을 감고 귀 기울여야만 들리는 미세한 부분의 악기 연주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이 곡은 여전히 일본의 퓨전재즈 그룹 [카시오페아(Casiopea)]의 향기도 느껴지는 곡이다. 처음부터 김종진이 [카시오페아]의 기타리스트 이세이 노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1집과 2집의 곡들에서도 유사한 작법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카시오페아]의 음악이 가볍고 경쾌하면서 템포가 빠르다면, 김종진의 곡들은 퓨전재즈의 경쾌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경박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고 담백하면서 고급스럽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듣던 귀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수준 높은 퓨전음악을 추구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8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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