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봄여름가을겨울’
다음 곡 <그대 향한 그리움을 이젠 내게>는 20대를 떠나오며 좀 더 성숙한 철학적인 느낌을 담은 첫 곡이라 할 수 있다. 젊은 날의 연애나 사랑으로부터 살짝 떨어져 나와 이젠 그리움이나 아쉬움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듯 느껴진다.
이 곡은 5분 26초의 긴 곡으로 3집 앨범 곡 전체에서 가장 길다. 3집에는 5분이 넘는 곡이 세 곡이나 된다.
더욱 성숙해진 철학적 감성을 담은 느낌은 다음 곡인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날을 후회하는 것보다는 더 많이 남은 내일을 기대하는 노랫말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새로운 시작에 딱 어울리는 자신감이자 다짐처럼 들린다.
지난날, 존경하던 선배와 친근한 벗을 잃었던 힘든 기억을 떨쳐내고, 이제야 힘차고 거대하게 내일을 향하고자 하는 열망이 당찬 멜로디를 타고 힘 있게 솟아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은 건 아니다. 2집 앨범에서 김현식을 기리며 <봄여름가을겨울>을 수록했다면, 3집 앨범에는 친구 유재하를 기리며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넣었다.
유재하의 곡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김종진이 부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유재하의 음색과 김종진의 음색이 너무 다른 데다가 편곡을 통해 음악적 장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잊지 않고 음악을 통해 그리움과 우정을 되새기는 모습은 [봄여름가을겨울]이 단순한 딴따라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유재하가 다른 뮤지션에게 주지 않고 자신의 앨범에만 수록한 곡에는 <지난날>, <우울한 편지>, <사랑하기 때문에>가 있다.
앞서 조용필에게 <사랑하기 때문에>를 주었다가 후회했다는 얘기를 했다. 음악적 완벽함에 대한 고집과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데, 그 가치는 <지난날>과 <우울한 편지>라는 곡을 들어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질 것이다.
유재하의 곡은 [김현식 3집]에 <가리워진 길>, [김현식 4집]에 <그대 내 품에>가 있고, 1985년에 발표된 [이문세 3집]과 1987년 발표된 [문관철 1집]에 <그대와 영원히>가 수록된 바 있다.
너무 짧은 생을 살다가 간 탓으로 유재하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KBS에 쿨FM에서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노래로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뮤지션’이라는 주제로 유재하 음악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다.
[파이낸셜뉴스, 2013.11.01., 최현정 기자]
여기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과 전태관을 비롯해 김광민, 장원영, 장기호 등의 인터뷰가 짧게 남겨졌는데, 전태관은 “재하는 이소룡 흉내 내는 걸 좋아했던 개구쟁이에, 초등학교 때부터 기타 치고 노래했던 독특한 친구였다”라고 전하고 있고, 김종진은 “재하는 무대 위에서 ‘꺅’, ‘오빠’ 소리 듣는 걸 좋아했던 친구였다”라고 전한 기록이 남아있다.
– 유재하 작사/작곡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 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
근심 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
지워버린 그 기억들을 생각해 내곤 또 잊어버리고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이제 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예술이 위대한 이유는 아마도 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인간보다 우월한 가장 큰 이유가 아마 죽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이유로 음악을 포함한 예술은 신과 같다고 하겠다. 유재하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가 남긴 유작은 여전히 살아있다.
유재하의 음악이 이처럼 기억에 남고 가치가 남다른 지점은 그의 죽음과 연계한 ‘천재의 유작’으로 불리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나라 가요사는 유재하의 음악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트로트가 장악해 있던 한국 가요계에 영미권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정을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그 선두를 얘기하자면,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음반을 하나의 작품으로써 ‘앨범’의 개념을 만들어낸 신중현의 [애드훠 1집]을 시작으로 해서 록 음악과 포크 음악의 혁명기를 거쳐 한대수, 김민기로 대표되는 모던 포크를 지나, 1975년 5월 13일 발동된 긴급조치 9호 아래 금지곡 목록이 만들어지던 암흑 시절도 있었다. 또 윤형주, 이장희, 이종용 등이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젊은이들의 저항문화로 상징되던 포크 문화는 하루아침에 퇴폐적인 문화이자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문화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타고 신중현을 비롯해 김세환, 김도향, 김추자, 정훈희, 임창제 등이 검찰에 구속되거나 불구속 입건되는 사태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음악 창작은 이대로 좌절되고 마는 것인가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중반에는 많은 뮤지션이 새로운 음악적 창작을 선보이며 다시 태동하던 시기다.
조동진과 어떤 날(조동익, 이병우)과 시인과 촌장이, 이정선과 엄인호, 한영애, 김현식이, 따로또같이(이주원, 나동민, 강인원)가 들국화(전인권, 최성원, 조덕환, 허성욱), 최구희, 주찬권, 손진태와, 시나위(신대철)가 주변의 헤비메탈 밴드들과 저변을 넓혀갔다.
또 버클리음대로 유학을 떠나는 한상원, 정원영, 김광민, 한충완과 그들 주변에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박성식, 유재하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활발하게 음악적으로 교류했고, 이때 김현식을 매개로 신촌블루스와 [봄여름가을겨울]이 만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 1984년에서 1987년이었는데, 음악의 장르와 스타일도 다양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재하의 음악이 다른 뮤지션들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들과는 또 다른 홀로 독특하고 독창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재하는 한양대 작곡과를 나와 자신의 음악에 클래식을 접목해 좀 더 고급스러운 대중음악을 탄생시켰으며, 시대적인 암울한 정서가 곡 전체에 깃들어있다. 천재는 시대를 너무 앞질러 살아서 슬픈 운명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던데, 유재하의 경우도 그 경우의 수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아무튼 그의 이러한 음악에 대한 예술적 완성은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명반 [유재하 1집 – 사랑하기 때문에]로 탄생했고, 그 속에 숨겨진 메타포를 통해 영원토록 살아 숨 쉬며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느 날, 언제고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리움이 된다.
잊지 않고 친구를 그리는 마음, 추억의 한때가 사진처럼 남아 기억을 활강한다. 시간의 흐름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나 또한 그리움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을 감아본다.
(#9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