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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헥토르 Jul 29. 2018

휴가 – 와지엔키 공원 (Łazienki Park)

폴란드의 여름은 푸르다. 푸르기도 하지만, 이 푸름과 함께 동반한 불청객 더위 역시 함께 한다. 좋은 것은 한국 여름의 뜨거운 수증기와 같은 날씨처럼 불편함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행이다. 그늘의 소중함을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곳 날씨에서 햇살은 강렬한데 양지에 있을 때 뜨겁다가도 그늘진 음지로 가면 에어컨보다도 더 차가운 자연적인 시원함을 맛보게 된다.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쇼팽 피아노 연주 공연 시작 전

오늘은 쇼팽 음악을 듣기에는 기가 막힌 날씨라 와지엔키 공원으로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12시 시간에 맞춰 쏜살같이 달려본다. 조금은 따갑지만 기분 좋은 햇살이 반갑게 와지엔키 공원을 비춰주고, 많은 사람들이 이 엄청난 천재의 음악을 듣기 위해 12시쯔음하여 북적북적 모여든다 약간 더운 느낌은 나지만 그래도 피부가 마냥 찐득찐득 하진 않는다. 

게다가 바람이 아주 소리 없이 살살 스쳐가니 공기중의 습도가 피부에 닿아 불쾌함을 주기 전에 이미 무마시켜버리고 완벽한 음식의 간을 맞춰준다. 30분넘게 자전거로 쇼팽 동상 앞까지 달려와서 땀이 날 법도 그렇지도 않는다. 그래도 가방에 달려있는 쇳덩이 지퍼는 금방 달궈져 있었다.  

누군가와 꼭 대화를 해서 흥미 있는 가십을 만드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지만, 지금 이 동상 앞에서 저마다 숨죽이며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는 편이 보다 이 장소와 시간과 어울려 보인다. 하늘 위에 모습은 청명하지만 약간의 솜사탕 같은 구름으로 인해 와지엔키 공원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구름도 피아노 건반에서 나오는 음에 따라 조용히 나름만의 악보를 하늘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듯 하다. 


12시가 되자 사람들이 이 쇼팽 동상을 중심으로 싹 둘러 앉았고, 방금 전만해도 비어 있었던 벤치는 그 사이에 음악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나중에 온 이들은 벤치에 앉지를 못해 잔디나 약간 비어있는 공간을 이용해 드문드문 앉았다. 그새 잔디밭은 공연장이 되었다. 

쇼팽이 생전에 매우 아끼고 죽기 전에 악보를 없애 달라고까지 요청했던 유명한 곡, ‘즉흥 환상곡’이 끝나자 연주자는 관객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연주의 끝을 알렸다. 우뢰 같은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그 피아노곡에 취하여 따뜻한 햇살아래 잠을 자고 있는 사람도 눈에 보인다. 

그 다음에 이어 ‘폴로네이즈 Op.53’ 이 들려온다. 원래 궁정에서 폴란드의 귀족이 의식용으로 쓰였던 노래가 점차 폴란드의 서민적이고 민족적인 곡으로 변모하면서 무곡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이 곡은 가장 폴란드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피아노곡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들려오는 음색들 속에 아주 깊은 곳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조용히 파도치고 있었으며, 가느다랗게 섬세하고 힘이 있었으며, 화려한 시대를 이야기 하듯 그 간의 옛날 스토리를 청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듯 하였다. 조국 폴란드를 사랑한 쇼팽의 손마디마디 하나는 폴로네이즈의 곡에 무수한 폴란드 사람들의 정서를 써 내려 갔으리라. 그 뜨거운 가슴으로 조국을 그리워했던 쇼팽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폴란드의 독립을 염원하였다. 

문득 옛날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흔적을 느끼면서 생각나는 그 독립투사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중략) 


윤봉길 의사가 했던 것처럼 쇼팽 역시 음악으로서 자신의 이상을 꽃을 피우고, 나라와 민족에 대해 뜨거운 사랑을 바쳤다. 오늘의 나는 어떤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살까? 나는 왜 사는 것일까? 라는 어려운 질문에 다시 또 고민에 빠져본다.  


음악을 마치고 공원 가운데 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여러 나무들과 청솔모, 그리고 조각 상들이 기가 막히게 우리의 산책길을 반겨준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에 와지엔키궁이 곧 발견된다. 원래 사냥터였던 숲을 철학자인 스타니스와프 에하크리우스 루모미르스키가 사들여, 귀족들은 위한 목욕 시설을 만들었고, 폴란드 마지막 왕이었던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투스 포이아토프스키 다시 사들여 여름궁전을 만들어 낸다. 

와지엔키가 원래 목욕탕이라는 뜻으로 공원이름이 지어졌는데, 바로 이곳 목욕시설을 가리켜 이름이 만들어 지게 된다. 궁을 멀리서 보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느낌도 들고, 그보다도 호수에 비친 바로크 양식의 궁의 모습은 인도의 타지마할 묘당과도 견줄만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 아름다움을 더욱더 아름답게 만드는 공작새가 궁 앞에서 관광객에게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1795년에 폴란드는 삼국분할을 당하여 나라가 없어지는 시기가 오는데, 그 몇 년 전에 와지엔키 공원이 만들어졌음을 짐작하면 풍전등화의 나라 운명에 마지막 왕이 어떠한 심정을 가지고 이런 토목 공사와 예술품을 남겼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 나라를 제대로 걱정을 했다면 와지엔키를 사들이는 일보다는 다른 일에 좀더 치우쳐 나라의 국력을 올렸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긴 하다. 

대조적으로 궁 뒤편에 궁을 연결하는 기마상이 서 있다. 얀 소비에스키 3세로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포위된 빈을 돕기 위해 출병하여 투르크군을 무찌르고 서방세계를 지켰던 군사 전략가이자 폴란드 전성기의 끝점에 있었던 왕이었다. 와지엔키 공원을 만들고, 나라를 잃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 기마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어째든 오늘은 쇼팽의 음악을 들었으니, 쇼팽 보드카나 한잔 하며 폴란드의 향기를 맡아 볼까나? 즐거운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까르푸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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