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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헥토르 Aug 30. 2018

휴가 – 말보르크(Malbork)

그단스크에서 30분 정도만 기차 타고 가면 14-15세기 시대의 최고의 성이라 할 수 있는 독일 튜턴 기사단이 축성한 말보르크 성이 나타난다. 1274년에 지어진 이성은 현존하는 성중에 세계에서 10대 성안에 들기도 하며 혹자는 유럽의 성중에서도 가장 큰 성이라고도 불린다. 

동양적인 시각으로 관광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가장 유럽답고 중세적인 시대 냄새가 나는 성중의 하나여서 이것이 정말 중세시대를 대표한 건축물이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성이 그 요새로 그 역할을 다 하려면, 내가 아는 바로는 일단 물을 공급하기 용이해야 하고, 적의 진입이 쉽지 않은 길목과 자연환경을 이용한 축성, 지휘체계가 원활한 시스템, 시야 확보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말보로크 성을 바라볼 때, 서쪽에 Nogat강이 흐르고 그 위로 성이 쌓여있어, 식수 확보가 원할하면서도 물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아 보였으며, 성이 견고하고 하성, 중성, 상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중 구조물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지휘 체계 전달도 상성 중심으로 전파하기 쉬웠을 것으로 보였다. 

또한 가장 높은 타워에 올라가면 말보로크 주변이 전부 평원이라 멀리서도 적이 오는지 쉽게 감지할 수가 있었다. 난공불락이었을까? 아쉽게도 이곳을 배경으로 많은 희대의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대공국 연합군에게 그룬발트 전투 이후에 패퇴한 튜턴 기사단이 이곳 말보로크 성으로 돌아와 전열을 가다듬고, 브와디스와프 2세가 이끄는 기세 등등했던 폴란드군을 이 거대한 성에서 물리쳐 기사단의 명목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떡하랴. 그 아무리 견고한 성일지라도 안에서 무너지면 그 웅장한 하드웨어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13년 전쟁으로 인해 튜턴 기사단은 성을 운영할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못 버티고, 성을 벗어나자 1457년, 폴란드 왕 카시미르 4세는 이곳을 무혈로 입성하게 된다. 한때 튜턴 기사단의 본부이기도 했던 이곳이 싱겁게 폴란드의 손에 들어가 3국 분할의 시기를 거쳐 폴란드의 땅으로 계속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말보로크 성의 4대 튜턴기사단장, 전통복을 입고 중세의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청년들, 그리고 말보로크 내외부 모습]

튜턴 기사단 혹은 독일 기사단이라고 불렸던 이곳의 원래 성 주인의 초대 기사단장은 지그프리트 폰 포이히트방엔 이라고 하여 지금도 그의 동상이 성안에 남아,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 

성 자체는 겹겹의 해자와 망루 그리고 높은 타워만을 강조하여 단순히 요새로서의 기능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는다. 성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숙소와 화장실의 모습들, 식당, 그리고 교회와 더불어 종교적인 벽화와 예술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방, 무기고, 마구간 그리고 그 당시 입었던 옷들과 무기들 역시 전시되어 있어 14-15세기 그 시대상을 통째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성이기도 했다. 

이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보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라디오 가이들 청취해야 하만 그 의미를 곱씹어 알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보기만 한다 해서 이곳이 관광지로 좋다 나쁘다 판별은 절대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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