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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헥토르 Jul 27. 2018

휴가 – 그라쿠프 (Krakow)

“바르샤바가 근대화 시기와 세기말의 유산물이라면 그라쿠프는 중세시대 북동유럽 강자의 마지막 수도이자 중심이구나.” 혼자 그라쿠프 거리를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에 중얼중얼 거리게 된다.  


노동절이 다가오는 어느 날 크라쿠프에 비가 보슬보슬 내려 도시의 온 건물이 촉촉히 젖어간다. 그 비로 건물은 보다 짙은 색깔을 내어 세상이 약간 무겁게 보여지기도 하는데, 나름의 무거운 분위기로 그 길고 웅장했던 크라쿠프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500년의 폴란드 왕들도 이러한 비를 맞아가며 세월을 보내고 제국의 번영을 위해 고민해 왔으리라. 5월이 다되어 가는데 사람들은 몸에서 점퍼와 코트를 벗을 줄을 모른다. 나무들은 조금 기지개를 피는 것 같긴 한데 사람들에게는 아직 이곳 날씨로부터 자유로 울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듯하다.  

올드타운에 들어서면 가장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13세기에 건축된 세인트 성모마리아 대성당이 눈에 띈다. 81M의 고딕양식 탑과 69M의 돔형 첨탑이 함께 서있어 보다 다양한 시대의 맛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여기에 얽힌 이야기 중에 하나가 몽골 침입 때 그 침입을 알리려 나팔수가 나팔을 불다 화살에 목을 맞고 전사하였던 안타까운 사건이 있고, 그 나팔수를 기리기 위해 매 정시가 되면 나팔수가 나팔을 부는 이벤트를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팔의 소리는 화살에 맞는 순간 멈췄을 때의 모습 그대로 중간에 나팔에 울려 퍼진 음악이 갑자기 정지한다.  (이 나팔 소리를 ‘헤이나우 나팔’ 이라고 부른다.)

올드타운 곳곳에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으로 옛 분위기가 바르샤바보다도 더 다채롭고 인상적이었는데, 참고로 그라쿠프가 유럽의 3대 큰 올드타운 안에 속한다고 하니, 나름 그 타이틀에도 이곳은 더욱더 매력적인 관광지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저 멀리 비스와 강을 끼고 건너편에 있는 옛 바벨 성은 지난 폴란드 통치자들의 삶을 간직하고 굳건하게 서있다. 오랜 세월 동안 군주들이 바벨 대성당과 함께 종교의 힘을 빌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쳤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이곳에서 왕 장례식과 대관식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폴란드 16세기를 황금기 시절을 이끌었던 지그문트 1세가 잠들어 있다. 옛날 바벨 언덕에 전설 속의 용이 이곳에서 살면서 불을 뿜었다는 옛날 이야기는 이곳의 중요성과 가치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까마득한 옛날, 매주 가축을 바쳐야 하는 무시무시한 용이 있었는데, 왕은 이 용을 물리치는 자는 공주와 결혼시키겠다고 하였고, 한 청년이 황을 가득 넣은 양가죽을 먹여 용을 물리쳤다는 내용이다.

그 청년의 이름이 크라라고 불려 이곳 도시가 크라쿠프라고도 불린다. 용의 전설 때문에 그런지 지붕 처마끝에 용 모양의 장식과 길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용과 관련된 기념품도 눈에 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가 졸업한 유럽에서 2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야기엘론스키 대학이 이곳 크라쿠프에 있으며, 탄식의 다리라는 곳을 지나가면 차르토리스키 오래된 미술 박물관이 있기도 하다. 교육과 문화, 정치의 중심이었다는 말이 절로 실감이 난다.  


유대인의 의자광장 (게토 하이로즈 스퀘어) 

제법 큰 광장에 젊고 낡은 목재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누가 와도 한번에 알 수 있듯이 주인을 잃어버린 고독한 의자임을 쉽게 눈치챌 수가 있었다. 그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에 메인 광장의 의자에는 당당하고 오만하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29개의 의자 앞에서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고, 다만 이들 옆에 있는 광장 가장자리의 벤치를 벗삼아 잠시나마 생각을 정리해본다.  

이들도 이렇게 그들의 희생된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려는 노력을 하는데 왜 또 한 이들은 한 울타리에서 지내고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똑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 왜 그 이웃의 희생을 만들고, 그 희생의 기억을 감추고 지우려 하는지.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뎌진 자신을 매일같이 보곤 한다. 삶이 팍팍하여 나 혼자 먹고 살고 즐기기 바쁘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 하려 하는 그들의 고통들. 그러나 그 고통들을 외면하기엔 우리는 이 세상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엮여버려 있어 외면이 아닌 살인 방조죄까지 우리도 모르게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은 대부분 Made in Vietnam, Bangladesh 등이고, 내가 회사에서 쓰고 있는 스마트폰, 이것 역시 스마트 폰의 주재료인 콜탄의 광산지 콩고에 대해서 별로 그다지 관심들이 많지는 않다. 심지어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조차 잘 모르고 있기까지 하다. 그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우리회사에서 취급하는 스마트폰에 대한 콜탄의 출처를 제대로 설명해주질 못했다. 심지어 그런 것이 있냐고 되묻는 책임님들과 선임님들이 오히려 내가 이상한 듯 질문을 한다. 숫자와 매출에 집중에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지. 삶은 팍팍하니까. 



의자 광장에서 조금 더 걷다 보면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이 2차 세계대전 중에 공장을 운영했던 곳, 쉰들러 공장(Oskar Schindler's Factory)이 나온다. 사실 폴란드에 오면 몇 가지 영화를 보고 이 나라를 감상하면 보다 더 폴란드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가 있다. ‘피아니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 리스트’, ‘바르샤바 1944’ 등이 그것들인데, 이 모든 영화가 전부 2차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폴란드 안에서 자행 되었던 나치의 만행과 전쟁기간 중의 있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바르샤바, 그라쿠프 방문시에는 역사를 이해하기 상당히 도움이 될 수가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조언을 받아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그 영화의 무대가 된 장소인 쉰들러 공장을 이 두 발걸음으로 직접 와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수용소에 끌려가는 유대인들을 자신의 공장의 노동자로서 일하게끔 하여 끔찍한 노역을 피하게 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그 광기의 도가니에서 구출 하려 했던 한 독일 사업가의 이야기로서 쉰들러 리스트 영화에서 생생하게 나온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고, 그 덕분에라도 이곳은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실제 막상 가보면 쉰들러 관련한 전시가 죽 나열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이야기 보다는 폴란드와 그라쿠프 근대사, 2차세계 대전 당시들의 모습과 실상에 좀더 포커스된 듯한 박물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나름 폴란드 역사의 배경도 알 수 있게 되는 1석2조 효과라 할 수 있다. 그가 운영한 공장에서 생산한 놋그릇, 수저, 전쟁 관련 철제 물자가 전시되어 있고, 그가 있었던 오피스도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어 그가 당시 유대인을 구할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한 그 절박함이 영화 장면과 현재가 함께 머릿속에 교차되어 간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라는 명언이 있는데 지금의 우리는 한 사람을 구하는 것에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해져 버려 그 생명 하나하나 소중함과 그것이 가진 역사의 산물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린 한 사람을 구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구하는 방법부터 살펴봐야 할 현대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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