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마지막을 알리며, 봄의 시작을 서서히 알리는 비가 하루 이틀씩 내릴 무렵, 바르샤바도 촉촉히 영양 넘치는 수분으로 가득 차는 시기가 오기 시작한다. 눈이 언제 내렸다 싶어, 비가 잽싸게 내려 그 자리에 있던 눈을 녹아 내리게 하고, 새로운 길의 문을 열어준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산을 좋아하는 나는 폴란드에 유일하게 산이 있는 곳인 남쪽을 향해 분주히 정보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음의 폴란드 속담은 그 산이 있는 자코파네라는 도시에 대해 더욱더 흥미를 가지게끔 불을 지핀다.
버스를 부지런히 타고 가다가 잠이 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왠지 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진동이 어렴풋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높은 산들이 멀리서 뉘엿뉘엿 보이기 시작했고, 봉우리에 쌓여있는 눈이 하얗게 이빨을 들어냈다. 쌀쌀하면서도 상쾌한 공기가 반겨 다가오고, 평지만 보아왔던 평소의 삶에서 탈피해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정상에서 새로운 세상과 자연의 묘미를 한발자국 한발자국 확인 할 수 있는 곳. 드디어 산에 간다.
Zakopianka 하천을 건너 숙소를 찾아 Harenda 거리를 가면서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뾰족한 지붕을 하고 건물들이다. 그렇다. 그럴만했다. 이곳은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 지붕에 쌓이는 눈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는 저런 날카로운 지붕으로 눈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함이라. 저 멀리 산 비탈길이 내려와 아름다운 촌락을 만들고 그 중심에는 오래된 이 지역의 성당이 독특한 나무목재로 운치 있게 지어져 있다.
바르샤바 중심으로 이루어진 평원지대의 성당과는 다른 형식의 건축물들이 또 다른 여행의 참 맛을 더해준다. Harenda 길에서 산 비탈길로 순하고 미친 양처럼 잡초를 스치고 풀 내음을 맡고 산 내음을 맡으며 달려가다 보면 어느 세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색다른 가옥들이 펼쳐지고, 그 뒤로 산들이 눈을 뒤덮고 병풍처럼 늘여져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자코파네다.
바다의 눈이라 했던가. 모르스키에 오코라는 자코파네만의 또 다른 명소 중 하나를 들렀다.
사전에 사진에서 봤던 눈 없는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얼어버린 모르스키에 오코가 오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펼치고 있다. 이 깊은 산에 호수가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산 능선 사이사이에서 줄기차게 내려오는 물들이 이곳 호수로 모여 자연의 위대함을 창조해 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 호수 위에 또 다른 호수가 있어 눈을 해치며 올라가는 도중에 마냥 정 없다고 생각했던 폴란드 사람으로부터 아이젠을 빌려 받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갈 수 있었다. 어려운 일 앞에서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시대의 사회적인 윤리라고 판단되는 일에 대해서 용기라는 에너지가 함께 동반이 될 때, 도움으로서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결정한다. 우린 그 아이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폴란드분과 어려운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또 하나의 피어난 관계로 순간의 사람의 냄새를 만끽했다.
이 후에도 바르샤바에서 버스를 탈 때 카드가 작동이 안되어 버스 티켓을 못 끊고 있는데 옆에 있는 폴란드 청년이 흔쾌히 자기 돈으로 끊어주고 자신은 다음 정거장에서 쿨하게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세계는 난감한 일일 때 더욱더 행복해지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사회적인 동물임을 알게 된다.
입구에서는 모르스키에 오코까지 약 2시간정도 쉼 없이 올라가야 이 진기 명기한 장소를 볼 수 있는데, 올라가는 길이 도보로 걷기에는 안성맞춤으로 잘 갖추어져 있는데도 제법 씩씩하게 힘을 내야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가 있다. 올라 가는 동안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산속 골짜기가 눈에 띈다.
깊은 골짜기가 나오다가도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와 잠시나마 휴식할 공간을 가져다 주는가 하면, 크고 작은 골짜기에서 나오는 물들이 만나 물만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진풍경을 자아낸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자연의 경이함을 감상한다. 올라가다가 보면 2시간동안 가는 길을 동물의 힘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차들인데, 마차도 나름 이 길을 지나가면서 진풍경 중 하나다. 그래도 말이 사람을 태우고 경사 있는 오르막길을 제갈을 물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정해진 길 이외에 좀더 가파르지만 샛길도 종종 보였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좋은 루트이긴 하지만 좀더 에너지가 필요한 곳이기도 했다. 밥 힘이든 피오르기 힘이든 뭐든 필요하다. 빨리 갈려면 뭐든 각오해야 한다.
산길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법칙 하나가 돌아가려면 조금 더 많은 것을 둘러보게 되는 여유와 감상을 배우게 되고, 급하게 올라가려면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빨리 도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무엇이 더 좋은지는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겠지만 오늘은 돌아가면서 둘러 보는 세상을 택했다.
폴란드의 유명한 소설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가 자코파네에서 지하 통로가 발칸 반도 밑을 지나 바다로 연결되는데 그것이 크로아티아 옆의 아드리아해로 통과한다고 한다. 이 물줄기 중 하나가 모르스키에 오코에서 온다고 하는데, 이런 전설과 함께 작가뿐만이 아니라, 시인, 화가, 작곡가 등에게도 많은 영감을 불어 넣어준 자연의 살아 있는 상상과 정신의 매체가 아니겠나 싶다.
타트라산의 가장 큰 호수를 다녀오고 나서 내려오는 길은 야속할 만큼 빠른 속도로 산 입구에까지 도착하였고, 해는 또 다른 여정을 위해 저 너머로 이곳 자코파네와 잠시 이별을 한다. 내일은 또 다른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동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뜰 것이다.
바르샤바와는 사뭇 다른 이곳, 어쩌면 폴란드 통틀어서 가장 이색적인 곳. 자코파네라 한다.
폴란드의 유명한 속담이 있다.
“삶이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땐, 네 곁엔 항상 자코파네(Zakopane)가 있다.”
내 곁에 있어준 자코파네, 우리 인생의 자코파네는 또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