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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은성 Oct 10. 2020

바보같이 나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질 못했고

내가 너를 그리워한다고 착각했어

“난 너를 사랑해. 너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


라는 말에 나는 너에게 눈이 멀었었다.

사랑을 믿지 않겠다, 왕왕 떠들어대던, 외로웠던 나에겐 그 말이 참 따뜻했다.


철저하게 남자 친구를 타인이라고 생각하며 계산적으로 사랑을 탐닉하던 내겐, ‘영원’이라는 말은 어쩌면 족쇄와도 같은 말이었다. 설사 내가 최악의 인간이라고 할 지라도, 내가 실패작이라고 할 지라도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그런 말처럼 들렸어서. 그래서 홀렸었다. 저 말이 강렬하게 나에게 와 닿아서.


그래서,


‘어둠 속의 달을 좋아하던 사람이 강렬한 태양에 매혹되면 눈이 멀기 마련이다. 그리고 바보처럼 눈이 먼 건 내 쪽.’


따위의 글을 쓰며 한 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너를 그리워했었다. 그러며 너를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했다.


그러나 역시, ‘타인’에 대한 기대는 키우면 안 되는 일이었나 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말은 어딜 가질 않았다. 너의 말에 점철됐던 나의 그리움은, 너를 다시 만난 후 철저하게 무너졌다.


다시 만난 너는 나를 함부로 대했다.

너의 말에 영감을 받아 ‘너’를 상상하던 나에게, 내가 다시 만난 사람은 ‘너’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에 대한 환상이 깨진 순간부터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했던 건 너라는 사람이 아니라 ‘너’가 뱉어낸 말에 깃든 ‘환상’을 좋아했다는 것을, 네가 만들어낸 허구인 ‘영원’을 그리워한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너에게 작별 인사 아닌 작별 인사를 건넨 후 나는 너에 대한 미련을 싹 쓸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너를 다시 만난 후에야 나는 너라는 사람을 과감하게 내 마음속에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너와 경험했던 일들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술자리에서의 안주거리 삼아 말을 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나는 내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어쩌면 아직도 환상에 속아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이 슬퍼서 술이 고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술을 마시며 매일 웃고 또 울었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내내 나는 ‘좋은 사람’인 척 해맑게 웃었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 남에게 꺼낼 수 조차 없는 음습하고도 어두운 상처들을 하나 둘 꺼내며 펑펑 울었다. 


「내 아픔을 꺼내도 도망가지 않을 사람이 필요해, 나의 우울을 이해해줘, 나를 가엽다는 듯 안아줘, 떠나가지 않겠다고 그리 약속해줘.」


라고 생각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어줄 것 같은 사람을 그리고 또 바랬던 것 같다.


이러한 나의 바람은 환상인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마음을 철저하게 봉인했다.


언제나 그렇듯 내 마음의 허기를 채우러 나간 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만나는 내내 나에게 깍듯하고 단정했다. 그리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더욱더 다정해졌다. 그의 다정한 말에 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그 사람에게 빨려 들어갔다. 말이 주는, ‘환상’에 쉬이 속아놓고선 바보처럼 나는 그 사람의 말에 속아 “좋아한다.”라는 마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이 좋다, 너무 좋아서 나만 보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만 집착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곁에 평생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함께 있어 불행하더라도 행복할 것 같다.」


이렇게 되었다. 쉽게 너와의 관계를 정리했던 것과는 달리.

미안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끓어오르는 마음이 또다시 식어버리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그리 된다면 너는 나에게 ‘쉬운 여자였네.’라고 비난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쉽다.’라는 것을 인정한다. 상대가 주는 ‘영원’이라는 환상에 잘 속아 넘어가니까. 그리고 그 환상이 1프로라도 실현되면 안심하니까. 행복해하니까. 진심으로 기뻐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바보처럼 아직도 사랑에 대한 환상 같은, 보이지 않아 잡으려 하면 할수록 부질없는 것을 또다시 잡기로 한 거다. 그리고 여전히 ‘영원’처럼 허무맹랑한 것에 속아 넘어갈 만큼 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오는 대사인,

‘더 많이 사랑해서 약자가 되는 게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약자가 되는 거야. 내가 준 것을 받으려고 하는 조바심. 나는 사랑했으므로 행복하다, 괜찮다. 그게 여유지.’

을 따라가려고 아등바등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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