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4일에 미준모 카페에 올렸던 글이다. 이 글을 올린 지 만 칠 년이 지난 지금 많이 달라졌다. 글을 그대로 퍼오진 않았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재산 가치도 달라졌고, 읽기 쉽도록 지금 시간으로 수정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같은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Yes"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모든 일은 일장일단이 존재한다는 것!
"미국에 가야 할까?", "한국이 더 나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하고 계신가요? 두서없지만 제 얘기 좀 풀어볼게요.
저희 남편은 미국인이에요. 2001에 만나서 삼 년 후에 결혼했어요. 저는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가 2007년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졸업하는 해에 남편도 같은 학교에 진학했어요. 부지런히 일하고 공부하면서 결혼 구 년 만에 제주도에 택지 한 필지, 신축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어요. 입주 대기자 세대수만 천명이 넘는 팔 년 후 분양을 앞둔 공공임대 아파트가 있는데, 대기자 접수 당일에 신청한 덕분에 2015년 6월에 입주 계약을 앞두고 있었죠.
이때 돌연 남편이 미국을 가야겠다고 하더군요.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 곁에 있어야겠다면서요. 한 달 전에 아들 녀석과 미국에 십일 정도 다녀왔는데도 좋아지기는 커녕, 더 우울해하더군요. 엄마 때문에 돌아가고 싶은데, 다시 시작할 엄두를 못 내서였을까요?
참 얄궂게도 남편이 폭탄선언을 했을 때가 입주하려던 공공임대 아파트만 포기하면 되는 게 아니었어요. 결혼 십일 연차라 수명을 다해가는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티브이 등 가전과 가구를 이천만 원 이상 들여 바꾼 지 오 개월도 안 됐고, 그랜저 뽑은 지 일 년 됐을 때거든요. 모두 처분하면서 삼천만 원 정도 손해 봤어요. 인터넷, 휴대폰등 각종 위약금은 백만 원 이상 나왔고요. 여기저기 돈이 쭉쭉 빠져나가더군요.
아까 말씀드린 부동산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이십억 정도 돼요. 남편과 같이 운영하던 공부방은 월 수입 천이백만 원 이상이었어요. 여름방학 특수를 기다리던 찰나에, 공부방을 하루아침에 공중분해시켰어요. 교재, 교구 구입하면서 이천만 원 정도 들었지만, 후배 나눠주고 남은 책은 도서관에 기부했고요. 정말 팔고 싶지 않았던 땅을 정리할 때는 눈물이 다 나더군요. 십오 년 넘게 한 길을 걸어서 일군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빠가 암투병 하시는 동안, 모른척하는 형제들 보면서, 남편은 갖은 거 다 털어서 아빠 모시라고 했어요. 대학원 졸업 후에 삼 년 반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원주에 공부방을 차렸어요. 육 개월 만에 자리가 잡혀서 저 혼자 월 수입 육백 만 원이 나올 때였는데, 돈 걱정 말고 얼른 제주도로 내려가라더군요. 아빠 간병하는 동안 병원비, 생활비 모두 애아빠 몫이었어요. 제가 힘들 때 그렇게 힘이 돼준 남편이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곁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하데 안 된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여하튼, 그렇게 남편의 한마디로 미국으로 왔어요.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저는 속으로 "언어와 신분 문제없고, 넉넉하게 초기 정착금도 있으니 괜찮겠지?"애써 현실을 외면했어요. 삼 개월 먼저 입국한 남편은 상황을 직시 못하고, 돈을 물 쓰듯 썼어요. 이만 불은 차를 사고,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 거침없이 삼만 불 이상을 생활비로 썼더군요. 총 오만 불이 그렇게 훌러덩 사라졌어요. 공부방을 접은 상태인데 한국 생활비, 미국 생활비 이중으로 드니까 답이 없더군요.
철없는 남편은 한국에서 쓰던 버릇 그대로, 나이가 많아서 취업도 안되고, 취직할 생각도 없어 보였어요. 반년 간 수입 없이 버티는 동안 일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저는 비자 문제로 남편보다 석 달 뒤에 미국으로 왔어요. 당연히 취업이 바로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 많고 학력만 높다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선 받아주지 않더군요. 영어를 저보다 잘하는 원어민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게 겁나서 첨부터 포기한 게 제일 후회돼요.
남편에게 다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했어요. 미국 온 지 칠 개원 만에 저랑 남편 둘 다 시간당 9.50 받는 파트타이머가 됐어요. 파트 타이머라 근무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각자 일주일에 이십 시간 정도 배정받았어요. 한국에서는 소그룹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시간당 100불 이상을 벌었죠. 1/20도 안 되는 수입이 그저 감사하더라고요. 일할 수 있는 곳이 생겼으니까요.
미국에 온 후로, 순전히 모든 것을 잃기만 했을까요? 손안에 있는 것을 놓지 않는 한 새로운 것을 절대로 가질 수 없잖아요. 돈 버느라 바빴던 한국 생활 대신, 돈이 부족하고 힘든 일을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았어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들이 우리 인생을 만들어 나가겠지요.
이민을 고민하실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게 우선순위가 아닐까요? 저흰 금전적인 풍족함 대신 가족을 선택했고, 이뤄 놓은 발판 대신 도전을 선택했어요. 왜냐하면 양친 부모를 다 잃은 저는 어르신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이 나라에서 정착하기까지 순탄치 않을 거라는 것,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내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올 수도 있겠지요. "내가 왜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아껴야 해?"라면서요.
굳이 비싸고 좋은 거 사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 사는데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여기 와서 다시 배우고 있어요. 그동안 돈 좀 번다는 이유로, 한동안 별생각 없이 235만 원짜리 패딩을 사 입고, 몸에 걸친 것들 계산해 보면 기본 오~육백만 원. 졸부 코스프레를 하고 있더군요.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과 아이 밥도 잘 챙겨 주지 않았고요. 저는 다시 아무것도 없었던 신혼 초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