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용건만 간단히

by 꼬솜

이젠 찾기도 힘든 공중전화박스에 "용건만 간단히"라 씌었던 기억이 있다. 삐빅 삐빅 여기저기서 드르륵 드르륵 조막만 한 돌멩이 같던 삐삐 차던 시절, 녹음 내용 확인 하려고 길게 늘어선 줄. 통화가 길어지면 다들 얼굴 찌푸리며 한껏 썽을 냈더랬다. 3~40분 줄 섰다가 차례가 되면 내용만 듣고 바로 나와야 눈총을 덜 샀다. 기다리다가 화를 참지 못한 사람이 전화기를 오래 잡았다는 이유로 칼부림을 부렸다는 뉴스가 보도되던 시절. 이젠 남편이 된 이 남자와 연애하던 2001년, 그저 전화 걸고 받기에 충실한 흑백 휴대전화였고, 데이터 요금이 미치게 비쌌다.


이 사람과 가장 저렴하게 통화하는 방법은 국제전화 카드 사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거는 것. 5만 원짜리 카드사면 10시간 통화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최저 시급은 2100원. 1시간 통화에 5천 원이니, 시급 두 배 이상. 비싼 국제 전화비 내면서 뭐 그리 좋다고 미주알고주알 떠들어재꼈던 지. 기숙사에 설치된 공중전화기는 자정이 지나면 내 차지였으니.


곧 결혼 20주년을 맞는 우리. 이제 공짜로 영상통화까지 가능한 시대에, 20여 년 전 "용건만 간단히"를 실천 중인 건가. 남편과 보낸 카톡을 주르륵 훑어봤다. 퇴근 후 픽업하러 온 남편이 남기는 "I"m here." 심지어 남편은 대답이 없거나, 난 며칠간 톡을 확인하지 않기도 한다.


한결 같이 곁에 있어주기에, 늘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라 믿기에 소홀 해진 건가. 때론 귀찮게 들리기도 했던 "I'm here." Honey라 부르지만 달달함은 빠진 지 이미 오래. 익숙하기에 무심해진 마음. 언젠가는 못 듣고, 못 읽게 될 "I'm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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