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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 홀로 여행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by 꼬솜

나 홀로 여행. 아픔을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지나 여름 방학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기한도 없이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여행을 떠났다. 제주 사람들이 낚시하러 자주 간다는 추자도에 가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많이 작았던 섬. 민박집이 보이길래 방을 잡으려는데, 가출 소녀로 보였는지 당장 집에 전화하란다. 신분증을 보여줘도 믿질 않는다. 아빠랑 통화가 끝나고서야 방을 하나 내주었다. 할머니가 하는 허드렛일을 도왔더니 밥도 얻어먹고, 방세도 깎아줬다. 할머니랑 같이 일하고, 얘기하다 보니 그새 정이 들었다. 사흘쯤 지났을까. 슬슬 뭍으로 나가려는데 태풍이 와서 배가 못 떴다. 그렇게 한 일주일쯤 머물다 보니, 할머니가 같이 여기서 살자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를 잃고 사무쳤던 외로움을 할머니가 조금 덜어갔다.


강호가 닷새 전에 나 홀로 첫 여행을 나섰다. 입대 전에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며 LA행을 몇 달 전부터 계획했다.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항공권, 숙소, 여행경비 알아서 해결했다. 그렇게 꿈에 부풀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아프니 여행을 안 가겠단다. 나도 남편도 그러지 말라고, 다시 오지 않을 귀한 시간, 잘 쓰고 오라 다독여 보냈다.


공항 도착했어. 비행기 게이트가 계속 바뀌네, 비행기 탔어. LA 잘 도착했어. 이제 숙소로 가. 순댓국 먹었어. 오늘은 머리를 잘랐어. 근데 겁나 비싸, 돈카츠랑 소바가 넘 맛있어. 짜장과 짬뽕은 매일 먹어줘야 해. 아빠, 여긴 사람들이 운전을 거지같이 해. 등등 짤막짤막하게 보냈던 톡이 셋째 날엔 오지 않았다.


여행을 가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 살아온 시간을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 보낼 시간을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 낯선 사람, 장소에서 낯선 이에게 위안을 받았으면 마음. 이런 마음이 너무 커서 톡을 보내는 아이의 마음이 걱정됐다. 혼자 있기 아직 버거운가 싶어서. 톡이 오지 않던 날, 자기 전에 밥 잘 먹고 다니냐고 묻자 잘 먹고 있다고, 재밌었냐 물으니 재밌다고 했다. 그걸로 됐다. 혼자 보내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아이도 알 날이 올 테니까.




백일 쓰기/ 여덟째 날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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