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쓰기 진행 중인데, 주제를 잡아 쓰고 싶다니까, 가사를 보고 느낀 점을 쓰는 건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았다. 그러면서 양인자 씨가 가사를 썼고 주현미 씨가 부른 <어허라 사랑>이란 노래를 잘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했다. "양인자" 낯설기만 한 이름과 엄마가 너무나 사랑했던 가수 주현미. 그 조합이 궁금했다.
<비 내리는 영동교>와 <짝사랑> 늘 흥얼거리며 식당을 꾸렸던 엄마.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귀에 딱지 앉을 만큼 그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게 잊혔던 사람인 주현미. 구글에서 <어허라 사랑> 가사를 서칭했다. 대체 어떤 노래인데 추천까지 하나 싶어서.
어라 어허라 사랑이 오네
나를 나를 울리려고 사랑이 오네
허락도 없이 떠날사랑 하나가
웃으면서 오고 있네
달콤하고 변하기 쉬운 입술
불 내놓고 물 뿌려본들
이건 아니야 고개를 돌리려다
그리움만 보고 말았네
어라 어허라 눈물이 된 사랑
노가리 너 대축은 죽어 나겠네
어라 어허라 사랑이 가네
나를 나를 울려놓고 사랑이 가네
만리장성을 쌓던 사랑 하나 가
혼자 바쁜 척하고 있네
사랑해서 떠난다는 사람아
엎어치나 메어치나
이건 아니야 고개를 돌리려다
그리움만 보고 말았네
어라 어허라 눈물이 된 사랑
노가리 너 대축은 죽어나겠네
얄팍한 사랑 타령이 아니었다.
얄팍함으로 위장한 삶의 무게의 묵직함을 담고 있었다. 첫 단어부터 심상치 않다. "어라"
사랑이 오기도 전에 어찌 울릴걸 알겠는가.
떠날 사랑이 웃으며 오고 있다어찌 말하겠는가.
인생풍파 맞을 대로 맞아 해탈한 사람
인생의 쓸쓸함과 아픔, 삶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이미 결과가 어떨지 알지만 그저 받아들이는 삶
이걸 어렵지 않게, 쉬운 말로 유쾌하게 풀어냈다.
"입술에 불 내고 물 뿌려본들"
어쩜 이리 쉬운 말로 맛깔나게 쓰지?
가사를 읽는 내내 양인자 씨의 내공의 깊이와 위트에 감탄했다. 너무나 괴로워 술로 밤을 지새울거다, 혹은 할 말이 너무 많아 밤을 새워도 다 할 수 없다. 뭐 이런 복잡한 심정을 "노가리 너 대축은 죽어나겠네" 한방으로 끝내버렸다.
도대체 "양인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양인자 씨는 1945년 함경도에서 태어났고 소설가, 극작가, 작사가, 각본가로 활동 중이다.남편 김희갑 씨를 만나 <킬리만자로의 표범>, <타타타>, < 그 겨울의 찻집> 외 삼백여편을 작사했다고 한다.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조용필/ 서울서울서울,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큐
임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문주란/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박혜령/ 소녀의 꿈
김국환/ 타타타
이선희/ 알고 싶어요
혜은이/ 열정
남진/ 나야 나
(출처: 나무위키 /namu.wiki)
이 어마어마한 노래의 작사가가 이분이었다니...
게다가 뮤지컬 명성황후가 양인자 씨 부부의 작품인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의 무지를 또 각성하게 만든 그 이름. 양. 인. 자. (설마, 이분을 저만 모르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