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김필 (feat. 김창완) 작사•작곡: 김창완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나를 두고 간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반복 부분 생략)
이 곡은 <응답하라 1988> OST 버전이다. 괄호 안에 "feat 김창완"이라 적혀있지만, 사실 그가 원곡자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 형제로 이루어진 록 밴드 산울림의 리더인 그가 1981년 아들 돌에 이 곡을 만들었다. 불과 몇 분만에 완성됐고, 슬퍼서 금지곡이 된 노래.
원래 가사는 '언젠가 가겠지'가 아니라 '갈 테면 가라지', '애달픈 연가'가 아니라 '애달픈 영가'였단다. 가사가 바뀐 이유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금지시켰기 때문이란다. 이 얘길 보고 그 시절엔 안 되는 게 무에 그리 많고, 오만 검열 하느라 공권력 무쟈게 바쁘게 돌렸구나 싶었다.
(정보 출처: hyunjiwoon.tistory.com)
아이를 키우며 '내 청춘 돌리도' 시전 중인데, 스물일곱 김창완도 그랬나 보다. 청춘의 뜻도 몰랐을 국민학생이 줄기차게 흥얼거렸던 "언젠가 가겠지"
어린애가 애늙은이 같은 노래를 부르냐며 핀잔 듣기 일쑤였다. 삼십여 년이 더 흘러 반백발, 청춘이 간 후 들으니, 내 젊은 영가(찬가)가 그리 구슬플 수가. 김필이 불러 더 그리 들리나.
시간의 흐름을 따르면 꽃잎은 피고 져야 하는데, 그는 '지고 또 피는'이라 썼다. 피고 지면 끝이겠지만, 지고 또 피니 세월은 그렇게 계속되는 걸 말하고 싶은 걸까. 져야 그 자리에 다시 또 꽃잎이 피어날 테니, 지는 숙명을 서글퍼말라는 걸까.
푸르렀던 청춘의 색깔은 노년기엔 고독한 회색, 세월을 머금은 흰색쯤으로 변할까. 노년을 그리 고독하게 그리고 싶지 않은데, 달리 생각나는 색깔이 없다. 이 또한 편견일 수도.
그 어느 누구도 붙잡아 멜 수 없는 시간은 그저 흐른다. 흔적도 없이 가버린 것 같지만 세월의 흔적이 온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더 구슬픈 게 아닐까. 이미 겪어냈기에, 그 시간을 살아냈기에. 하지만, 더 잘 살지 못해, 더 잘 살아야 했다는 통탄이 애달프고 구슬프다. 잘 사는 게 과연 뭘까.
청춘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이 노래를 흥얼거렸던 꼬맹이가 삼십여 년이 흘러 중년이 됐다. 이미 청춘이 가버린 나이. 또 다른 삼십여 년이 흘러 노년이 됐을 때 빈손짓에 슬퍼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간 잘 살아냈다고 등을 토닥일 수 있으면 좋겠다. 문종수 시인처럼 문지방 넘어서는 육순뿐만 아니라, 칠순, 팔순, 구순, 백순을 오실 줄 알았던 손님처럼 잘 맞이하기를, 혹여 문지방을 못 넘으면 또 어떠하리,
육순의 문턱에서
아주 낯선
처음 찾아온 손님같이
육순이 문지방을 넘어섭니다
어쩐다
허나 얼른 마음 고쳐먹고
중얼거리듯 말합니다
"어서 오시게나
오실 줄 알았네."
백일 쓰기/ 열일곱째 날(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