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폭탄 투하

휴...

by 꼬솜

17일간 집을 떠났던 강호가 나 홀로 여행에서 돌아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깎을 때 탑재됐던 짜증도 함께 깎인 건지, 슬쩍쓸쩍 으며 "그럴 수 있지"를 연발하는 애늙은이가 돼서 왔다.


비행기가 3시간 연착되면서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아침에 리쿠르터 만나러 나다가 11시쯤 돌아온 아이에게 입대 예정 시간을 물으니, 군대 안 가기로 했단다. 뜬금없이 군대 간다며 사람 혼을 쏙 빼놓더니, 갑자기 입대 며칠 앞두고 이건 또 웬 폭탄인가.


이유인즉슨, 아빠 심장이 안 좋은 게 벌써 두 번째라 부모님 곁에서 힘이 되고 싶단다. 우리 걱정 말고 하려고 했던 거,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좋겠다고 말렸다. 1년만 곁에 있겠다고, 그래봐야 열아홉이라며 되려 나를 토닥였다.


사람들이 정해 놓은 시기에 아이를 짜 맞출 생각 추호도 없다. 대학을 안 가겠다고 했을 때도 존중했다. 갑자기 입대 절차를 밟을 때도 존중했다. 그런데... 이 결정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 부모인 우리가 아이의 앞길을 막는 존재가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강호가 우릴 돌봐야 할 만큼 삶이 피폐한 것도 아닌데, 이 아인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스물한 살에 엄마가 돌아가신 후, 홀로 된 연로한 아빠를 돌보느라, 어렵게 들어간 기업체 강사 자리도 그만두고 제주로 갔다, 몇 년 후 아빠 상태가 호전되었다. 서울에서 영어학원 강사부터 다시 시작했다. 강호 6개월 무렵, 강호 보고싶다는 말씀 한 마디에 다시 제주행. 서른에 대학원 진학으로 다시 서울행. 거주지와 직장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남편까지 대학원을 마치고, 살만해진 서른여섯, 직장암을 이겨냈던 아빠는 이번엔 담도암 판정을 받았다. 다 갈아엎고 병간호하러 제주로 갔다.


아빠로 인해 15년 넘게 지속된 변화. 아빠를 원망하진 않았다. 사 남매 막내로 태어났지만, 나라도 돌볼 여력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원망치 않는다고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내 유일한 소망은 강호가 우리 때문에 희생하지 않는 것.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 그뿐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돈을 벌겠다고 양손 걷어 부치는 이 녀석을 어찌하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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