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법
업무가 루틴하고, 크게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한 5년쯤 일을 하다보면 내가 다니는 직장, 일, 관련된 상황에 대한 자신만의 어떤 틀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내가 좋아하는 부분, 나에게 보상이 되는 부분, 내가 하기 싫은 것, 내가 좋아하는/싫어하는 동료 이런 것들이 대략 정해지면서 좋음이 싫음을 상쇄하고, 가끔은 더 좋고 가끔은 더 나쁜 그런 일상이 그저 반복된다.
나 왜 계속 여기 다니지? 이거 왜 계속 하지?라는 생각이 불쑥 불쑥 들기는 하는데, 하루 일을 다 하고 나면 또 잊고 뭔가 다른 것을 해보려해도 귀찮다. 꼭 해야 하지만 싫은 일이 아닌, 이렇게 하는 건 좀 아니다 싶은 일들, 나에게도 조직에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 같은 일들도 그냥 하다보면 편하게 하게 되고, 그게 뭐 나쁜가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내 무의식은 이 상황을 괜찮지 않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건 바보같은 나 자신 뿐이었다.
사실 한 번 신호가 있었다. 여자들은 특히 스트레스가 호르몬에 영향을 많이 주고 우리 몸에서 호르몬 덩어리이자 가장 취약한 곳이 자궁이다.
한 번은 정기검진을 갔었는데 조직검사가 필요한 소견이 나와 정말 심장이 땅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검사 결과 어떤 상태냐에 따라 암일 수도 있다는 이 한마디는 정말 너무너무 무서웠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이도 암 전단계도 아닌 세포 변형 염증 상태였다. 물론 이것도 좋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정말 지금 돌이켜봐도 너무 무서웠던 순간이다.
그런데 나는 이 때부터 건강을 더 챙긴게 아니라 오히려 병원에 가길 더욱 더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어떤 우울증의 증상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신체적으로 지쳐서 정신적으로 나를 돌보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나는 치아, 잇몸도 좋지 않은 편인데다 어려서 이가 부러진 적도 있고, 어금니 한개는 영구치도 선천적으로 없었다. 그래서 정말 정말 잘 관리를 해야했는데, 이렇게 멀리 통근을 하며 다니는 시기에 피곤하기만 하면 이가 아프고 잇몸이 쑤시는데도 그냥 대충 약국에서 약을 사다먹으며 버텼다. 그러다 말고 그러다 말고 하니까.
일단 병원에 가기도 싫은데, 평일에 통근에 시간을 다 쏟다보니, 짬을 내서 병원에 가기가 어렵다고 생ㄱ가했고, 휴가를 내고, 시간을 내서 병원에 잘 다니고 했어야 했는데, 그 시간엔 놀고 싶고, 내가 못하던 취미 생활, 사람 만나기 이런 것들로만 스트레스를 치유하려고 했다.
그러니 더 안가려하고 뭔가 스스로 만든 악순환에 빠져서 건강을 정말 소홀히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냥 힘드니까, 다들 힘들게 이렇게 지내는 거 아닌가? 힘들다고 해서 내가 하루하루가 우울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열심히 즐겁게 지내고 있는걸? 어렴풋이 내 기분, 감정이 편치 못하다는 것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제대로 들여본 적이 없었으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아 너무 힘들다. 정말 너무 지쳐. 그래도 어떡하겠어?
왜 그렇게 그 당시에는 정말 미련하게 그랬을까?싶다. 근데 내 천성이 아파도 정해진 것은 하고, 늦잠, 지각 이런 것은 없고 이런 타입이었고, 부모님이 나를 챙겨주시는 데 익숙해졌다보니 내 스스로가 나를 돌보는 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일하러 다니고 집에서는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당장의 정신적 허기만 채우는 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