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시를 이야기하는 책
장장 6개월 만에 브런치에 중남미 관련 글을 쓰게 되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직장에 다니며 브런치에 자연스레 소홀해 있었는데...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된 이유는 바로 남미 시를 이야기하는 책 한 권을 소개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국내에 출판된 도서 중, 중남미와 관련된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보르헤스, 바르가스 요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문학의 거장들의 책들은 소개되었지만, 중남미 시인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새롭게 나온 책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는 특별한 점이 많다. 부제인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잘 알려지 않은 남미의 시들의 특징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지금까지 네루다, 볼라뇨, 베네데티와 같은 굵직한 남미 문학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을 국내에 번역하는 등, 남미 문학을 국내에 알리기 위해 힘써 왔다고 한다. 이 책 또한 남미의 위대한 시인들과 작품들을 국내 독자들에게 쉬운 방법을 통해 소개하려는 노력을 책을 읽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남미 대륙이 워낙 한국 사람들에게 낯선 대륙인만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워낙 유명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제외하면 다리오, 바예호, 파라와 같은 시인의 이름들은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심지어 다리오가 태어난 니카라과 같은 중미의 조그마한 나라들 조차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썼다. 우선 책의 구성을 보면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서구 중심 문학 변방에 위치한 남미 문학으로 시작한다. 가장 처음 저자는 남미 문학가들의 비애를 이야기한다. 동유럽 출신으로 빛을 보지 못했던 카프카 보다 더욱 인정받지 못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작가들을 인용하며, 서구 중심주의가 그들에게 남겨놓은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설명해준다.
나머지 2부와 5부는 각각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그리고 니카노르 파라를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던 점은, 단순히 남미 출신 시인들의 시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흥미로운 일대기와 그들이 받았던 평가에 대해 다루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근대시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루벤 다리오는 대학교 때 들은 “중남미 문학" 시간을 통해 익숙했지만,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2부) 루벤 다리오 편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부분은 그가 니카라과 출신으로서 받게 될 수밖에 없었던 비판이었다. “다리오에게는 철학이 부재하다는 것, 즉 니카라과는 예술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나라인데 그곳에서 예술을 사랑했으니 그에게 무슨 철학적인 깊이를 기대하겠는가…” 와 같은 비판은, 단순히 그가 서구 출신의 시인이 아니란 이유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3부)에서 다루는 파블로 네루다 이야기 또한 단순히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네루다의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와 네루다의 시를 읽으며 거의 두 달 가까이 매몰된 광산에서 버텨온 33인의 칠레 광부 이야기를 접목시켜 네루다의 작품성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4부)는 혼혈 인디오로서 받게 되는 사회적, 경제적 차별을 겪어야만 했던 페루 출신 작가 세사르 바예호에 대해 다룬다. 출신적 한계로 인한 가난과 부조리를 시로 승화시켰던 세사르의 이야기는 이 책의 부제인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와 가장 일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바예호는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작품을 탐독했던 시인이라 한다. 체 게바라는 늘 노트에 시를 필사해서 읽고 했는데, 그가 체포될 당시 가지고 있던 배낭 속에는 바예호의 시가 필사된 녹색 노트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5부)에는 사회적 구조와 엘리트에 대한 저항적 이미지가 그 누구보다 강했던 파라에 관해 다루고 있다. 파라가 칠레 사회의 불평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저항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현재 칠레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상황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책에 소개된 파라의 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배 터지게 먹는
한 줌의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이들이 굶주릴
필요가 있을까?
좌파와 우파가 뭉치면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
칠레에서는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백만장자들이 지배한다.
닭장은 여우에게 맡겨져 있다.
여러분에게 청하건대
어느 나라에서 인권이 존중되는지 알려 달라.
APEC 정상회담이 취소될 만큼 거세진 2019년 10월의 칠레 시위를 생각하면, 파라의 시는 현재의 모습을 보며 쓰였다고 해도 믿을 만큼 칠레 불평등 문제의 핵심을 다루었다. 엘리트에게 독점되어온 부의 분배, 인권 존중이 되지 않았던 과거 칠레의 모습이 지금과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점이 시를 읽으며 흥미롭게 다가왔다.
비록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남미 시인에 국한되어 있지만, 결국 국적을 떠나 인간으로서 겪는 보편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중남미 역사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살펴볼 때,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만약 남미 문학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남미 여행을 떠나기 전 좀 더 깊이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