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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Mar 11. 2022

과라니족과 반데이란치스의 음보로레 전투


과라니족은 파라과이와 브라질에 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과라니 문화가 발달한 파라과이에선 과라니어가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일 정도입니다.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훨씬 이전부터 삶의 터전을 꾸려온 과라니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그들만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남미 내륙 지역에 거주했던 과라니족들은 상대적으로 유럽인들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포르투갈은 브라질 해변 지역에 대농장을 건설하는 반면, 내륙 지역 상황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요. 대신 내륙에는 예수회 사람들이 오게 되면서, 원주민들에게 카톨릭 개종과 함께 유럽식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과라니족이 누렸던 평화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전쟁이 일어나면서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포르투갈의 노예무역 루트를 차단해 대농장 운영에 필요한 노동력 공급을 끊었고, 이에 포르투갈 사람들은 해안 지역을 벌이고 내륙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터전을 만들기 위해 그곳에 거주하던 과라니족 원주민들을 공격했는데, 역사 기록에 따르면 1628년에서 1632년까지 총 만 명이 넘는 과라니족들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공격이 점점 더 거세지자, 예수회의 리더였던 안토니오 루이즈 데 몬토야는 직접 나서 과라니족이 저항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1641년 3월 11일, 예수회의 지원을 받은 과라니족은 포르투갈과 음보로레 전투를 벌였고, 승리를 거두며 자신들의 지역을 지켜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음보로레 전투는 포르투갈의 진격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고, 지금의 파라나와 리우그란데 데 수르 지역에서 과라니족과 예수회 문화가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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