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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Mar 29. 2022

브라질의 수도는 처음부터 브라질리아였을까?


역사적으로 나라의 수도를 정하는 건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일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 교통이 좋은지, 안전한지, 자원이 풍부한지 등 다양한 요소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명운을 가릴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괜히 배산임수, 풍수지리를 따져가며 수도를 정한 게 아니었습니다. 


중남미에서 식민지 수도를 정할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교통’이었다. 대륙에서 캐낸 , 은을 비롯한 각종 자원들을 신속하게 배로 날라 유럽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찍부터 산토도밍고 (도미니카공화국), 리마 (페루), 베라쿠르즈 (멕시코) 같은 항구 도시가 주요 식민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포르투갈이 식민지로 차지한 브라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포르투갈 항해자들은 처음 포르투 세구로에 도착한  북쪽 해안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넓혀나갔습니다. 그들이 브라질 남부가 아닌 북부로 발길을 옮긴 이유는 목재 자원이 많았고, 사탕수수와 면화 같은 자원을 기를 여건이 충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원을 얻어내면서 점차 이를 요긴하게 옮길 수 있는 전략적 항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고민했습니다. 


살바도르 전경 (사진 자료: FT)


처음 브라질에 도착한 지 50년이 채 안된 1549년 3월 29일, 포르투갈인들은 브라질 북부 지역에 자신들의 첫 번째 식민지 도시인 살바도르를 건설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브라질 내륙 지방으로 확대를 하기 위한 기반을 다진 것이었습니다. 이후 살바도르는 약 20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브라질과 유럽이 교류하는 항구 도시가 됐고 식민지 시대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됩니다. 


살바도르가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아프로 (Afro) 문화였습니다. 과거 잉카와 아스텍 제국을 무너뜨렸던 스페인 제국은 원주민들을 노동력으로 착취할 수 있었던 반면, 포르투갈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할 노동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브라질로 데려왔는데 브라질에 왔던 총 5백만 명의 흑인 중 25%가 살바도르 항구에 도착할 만큼 살바도르엔 아프리카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아프리카 문화는 유럽 문화와 섞이며 살바도르 만의 독특한 혼합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살바도르에서 열린 축제 (사진 자료: pinterest) 


약 200년 동안 브라질의 주요 도시 기능을 했던 살바도르는 1763년 리우데자네이루로 수도가 이전되며 명성을 점차 잃었습니다. 브라질이 리우로 수도를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브라질 중남부 지역 광산이 경제적으로 더 수익성 있는 산업으로 자리 잡으며 정치적 권력도 자연스럽게 넘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브라질 식민지 시대를 대표했던 살바도르는 이후에도 북부 지역의 경제력이 약화되며 예전만큼의 명성을 잃었지만, 그 당시 문화의 흔적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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