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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pr 12. 2022

한 소녀의 꿈을 앗아가 버린 콜롬비아 비행기 납치 사건


1999년 4월 12일, 18살의 콜롬비아 소녀 레스즐리 칼리 (Leszli Kálli)의 기분은 한껏 들떠있었습니다. 자신이 기다리던 이스라엘 키부츠 (이스라엘식 공동체 농장)를 체험하러 떠나는 날이 밝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레스즐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부카라망가 (Bucaramanga)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고향 부카라망가에서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도착한 뒤 이스라엘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습니다. 비록 긴 여정이긴 했지만 곧 키부츠를 체험할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보고타로 향하는 아비앙카 9463편에 올라탔고, 한 시간 뒤 수도 보고타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비행기는 안전하게 이륙한 뒤 보고타가 위치한 내륙 지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꿈을 산산조각 낸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비행기 내부에는 총 46명이 타고 있었는데, 35명의 승객과 5명의 승무원, 그리고 6명의 무장한 납치범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ELN 게릴라 출신이었던 그들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승객들을 위협했고 조종사를 무기로 협박하며 비행기를 정글 한가운데 착륙시켰습니다. 레슬리를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들은 자신이 탄 비행기가 납치된 사실을 금세 깨달았지만 무장한 게릴라 요원들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공포에 떨며 게릴라 요원들이 명령하는 데로 비행기에서 나왔고 어딘지 알 수 조차 없는 정글 속으로 힘없이 끌려갔습니다.


정글 한가운데서 발견된 아비앙카 9463 (사진 자료: El Tiempo)


인질로 잡힌 40명의 탑승객과 승무원이 겪은 끔찍한 악몽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은 곧 정부가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란 희망이 있었지만 협상이 예상보다 지체되며 인질 생활이 길어졌습니다. 다행히 적십자회의 개입으로 노약자와 어린이는 금세 풀려났지만 이스라엘에 가고자 했던 18살 레슬리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또 다른 인질 중 한 명이었던 글로리아는 2019년 콜롬비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인질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이 보고 싶어 매일 울었는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 포기하지 말고 꼭 돌아오세요’라는 두 딸의 메시지가 라디오에서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힘을 낼 수 있었죠.”


납치 사건을 알렸던 콜롬비아 신문 (사진 자료: Vangaurdia)


한편 레슬리는 무려 373일 동안을 정글에서 인질로 잡혀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일기를 썼는데, 풀려난 이후 자신이 쓴 글을 ‘납치: 인질 생활 373일의 일기’ (Kidnapped: A Diary of My 373 days in Captivity)라는 한 권의 출판하며 당시 상황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또 그녀는 사건 이후 생존자들 모임에 적극 참여했고, 상처를 제대로 보듬어 주지 않은 콜롬비아 정부를 향해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납치를 주도한 ELN 세력이 감옥에 갔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닙니다.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 중엔 여전히 그때의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고 잊히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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