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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pr 16. 2022

멕시코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케이크 전쟁'



1838년 4월 16일 벌어진 멕시코-프랑스 전쟁은 ‘케이크 전쟁’ (Pastry War)이라 불립니다. 전쟁 이름에 케이크가 들어간 이유는 멕시코에 거주하던 한 프랑스 제빵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요. 멕시코시티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프랑스인 레몬텔은 강도들이 자신의 상점에 해를 입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 불만을 가졌고, 참다 못한 그는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총 6만 페소의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멕시코 정부는 그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당시 멕시코 하루 평균 임금이 1페소였다는 걸 감안했을 때, 6만 페소는 고려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나스타시오 멕시코 대통령이 이를 거절하자, 레몬텔은 이번엔 프랑스 정부에 자신을 보호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베라크루즈 전투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레몬텔의 소식을 들은 프랑스 루이 필립 1세는 그를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 한 프랑스 국민이 해적으로 누명을 써 멕시코에서 사형 당하자,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얻은 프랑스는 멕시코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며 복수를 예고했습니다. 


케이크 전쟁은 1838년 4월 16일 시작돼 다음 해 3월까지 계속됐습니다.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결정적 전투는 1838년 11월에 벌어졌던 베라크루즈 전투였는데, 멕시코는 프랑스 해군의 화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약 3개월 만에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전쟁 후 멕시코는 프랑스와 불공정한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처음 레몬텔이 요구했던 보상액 6만에 ‘0’이 하나 더 붙은 60만 페소를 프랑스에게 제공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미국과의 전쟁으로 이미 힘이 빠져있던 멕시코는 케이크 전쟁 이후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잃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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