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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May 13. 2022

350년 넘은 노예제도를 폐지시킨 브라질


1888년 5월 13일. 브라질 이사벨 공주는 ‘법령 제3,353호’에 사인했습니다. 브라질 역사상 가장 중요한 법 중 하나인 ‘노예 제도 폐지법’이 선포된 것입니다. 법 문서에는 오직 열여덟 단어로 간단히 써져있는데, 이는 아무 조건 없이 명확하게 폐지를 선언하기 위함이었다 합니다.


법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Art. 1.: É declarada extinta desde a data desta lei a escravidão no Brasil.

Art. 2.: Revogam-se as disposições em contrário.

제1항: 이 법이 선포된 이후로 브라질에서 노예 제대로는 폐지됐음을 선언한다.

제2항: 노예 제도 폐지에 반하는 조항들은 철회된다.


노예제도 폐지 내용을 담은 신문 (사진 자료: geledes.org.br)


브라질의 노예 제도 폐지는 중남미에서 가장 늦었습니다. 콜롬비아 (1851년), 페루 (1854년), 베네수엘라 (1854년) 같은 나라들이 1850년을 기점으로 제도를 폐지할 때, 브라질은 이를 외면한 것입니다.


브라질이 노예 제도를 유지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이익 때문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브라질의 주요 수출 품목은 대부분 농업 상품이었습니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17세기엔 사탕수수 생산에 집중했고, 18세기엔 광업, 19세기에는 커피, 가축 목장이 주요 수출 상품이었습니다. 대부분 산업들이 노동 집약적이었는데, 문제는 브라질의 노동 인구가 적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고, 결국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데려오는 노예무역을 실시하게 됩니다.


1500~1875 노예무역 자료 (사진 자료: Slavevoyages.org)


위 표를 보면, 얼마나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브라질로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대서양 노예무역 때문에 1,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중 6백만 명에 가까운 노예들이 브라질에 오게 됐는데, 이는 전체의 46.7%를 차지하는 수치였습니다. 또 1870년대 브라질 인구만 살펴보면, 전체 인구의 15%가 노예 신분이었습니다. 그만큼 노예 제도는 브라질이란 나라가 발전해오는 과정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한편 노예제도는 폐지론자 (Abolitionist) 사이에서 인권 침해라는 거센 비판이 있었습니다. 또 노예 생활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도망을 가거나 무기를 들고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농장 지주를 포함한 경제 엘리트들이 사실상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항쟁은 강력하게 저지당했습니다. 또 당시 교회마저 노예제도에 찬성하며, 노예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브라질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대한 제도적 논의는 많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라질은 1870년대에 들어서며, 노예제도 폐지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1871년, 브라질은 노예 여성에게서 태어난 모든 어린이는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선언한 ‘Free Womb Law’를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1884년에는 60세 이상의 노예를 해방시키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습니다. 1888년 노예제도 폐지가 선포되기 전에, 이에 대한 징후가 조금씩 있었던 것입니다.  


1530년경 처음 도입된 브라질 노예 제도가 1888년에 끝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 가지 생각해볼 만한 점은, 노예제도에 관한 브라질과 미국의 비교입니다. 브라질에선 미국 같이 노예 폐지를 둘러싼 내전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브라질 노예 폐지를 지켜본 한 미국인은, ‘브라질에서 노예 폐지 논쟁이 미국처럼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은걸 축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니다. 만약 두 나라의 노예 제도와 당시 사회적 상황을 비교한다면, 충분히 재밌는 역사 분석이 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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