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만큼 라이벌인 두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페루와 칠레입니다. 페루, 칠레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까지만 해도 같은 ‘리마 부왕령’에 속해있었습니다. 하지만 독립 이후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앙숙으로 변했습니다. 특히 1880년대 벌어진 태평양 전쟁을 기점으로, 두 나라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나빠졌습니다.
칠레와 페루의 갈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바로 ‘피스코 논쟁’ 일 겁니다. 여기서 피스코는 포도로 만든 브랜디를 뜻합니다. 피스코가 칠레-페루 국경 부근에서 생산되자, 누가 원조인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나라 모두 자신이 원조라 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각자 전통적인 피스코 생산 비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주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오늘 (5월 15일)은 칠레가 지정한 ‘피스코의 날’인 만큼, 칠레-페루의 피스코 갈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칠레의 '피스코 브랜딩 역사'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1년 5월 15일, 카를로스 이바네스 대통령은 법령 제181을 통해 피스코 보호법을 발표합니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피스코의 원산지가 칠레라는 걸 법으로 정하고, 칠레 특정 지역에서 재배된 상품만이 피스코라 불릴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칠레 정부가 지정한 공식 피스코 생산지는 북부 지역의 코피아포 (Copiapo), 와스코 (Huasco), 라 세레나 (La Serena), 엘끼 (Elqui), 오바예 (Ovalle) 주였습니다. 또 칠레는 피스코 독점 생산을 위해 규제법을 추가했습니다. 만약 다른 지역 음료에 피스코란 이름을 붙일 경우, 칠레 정부가 벌금을 물겠다란 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이후 칠레에선 이 법이 발령된 5월 15일이 자연스레 피스코의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페루 입장에선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들도 만드는 피스코란 이름을 칠레만 쓸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황당한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페루에는 이미 잉카 제국 시절부터 피스코라 불리는 항구도시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칠레는 1936년 엘끼 주의 어느 마을 이름을 피스코로 바꾼 것이 전부였습니다. 또 역사학자들은 칠레에서 피스코란 이름이 1800년 이후에나 쓰이게 됐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역사만 보면, 페루가 피스코의 원조인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피스코는 칠레에서 더 많이 소비되는 상황입니다. 또 칠레는 페루보다 세 배나 더 많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칠레가 일찍이 피스코 법령을 발표한 것과는 달리, 페루는 2007년이 되어서야 국가 문화유산으로 정했습니다. 피스코를 신경 쓰는 국가적 노력은 오히려 칠레가 페루보다 한 발 앞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페루나 칠레 여행을 가면, 현지 사람들이 종종 피스코를 마셔보라며 권하곤 합니다. 한국의 소주나 막걸리처럼, 아무래도 두 나라 문화를 대표하는 술이기 때문입니다. 페루에선 페루 사람들이, 칠레에선 칠레 사람들이 서로 '자기네 것이 최고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누가 원조인지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두 나라 모두 훌륭한 피스코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중남미 산 주류'가 있다는 건, 두 나라 모두 자랑스러운 일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