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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n 07. 2022

스페인을 떠나 멕시코로 가야만 했던 456명의 아이들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장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오랜 시간 자리해온 삶의 터전을 폐허로 만듭니다. 설령 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생존자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못한 채 말 못 할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1930  후반 스페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1936 벌어진 ‘스페인 내전 스페인 전국을 전쟁터로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빠뜨렸습니다. 특히 힘없는 어린이들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고, 하루하루 전쟁의 포화를 피하며 먹을 빵을 찾아 길거리를 맸습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37 5, 456명의 스페인 아이들은 바르셀로나에 모여 멕시크 (Mexique)호에 올라타게 됩니다. 인도적 차원에서 멕시코에 가게  아이들은 6 7 멕시코 베라크루스 항에 도착했고, 이후 모렐리아라는 도시로 옮겨가 생활하게 됩니다. 오늘의 주제는 멕시코에서 모렐리아의 아이들 (Los Niños de Morelia) 불리는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카르데나스 대통령 (중앙)과 아이들 (사진 자료: mexicodesconocido)


스페인 공화국을 동정했던 멕시코 카르데나스 대통령은, 인도적 차원에서 스페인 아이들을 잠시 받아주기로 결정합니다. 원래 프랑스, 영국, 스위스, 벨기에 등 여러 국가에서 임시로 아동을 수용하기로 합의했는데, 멕시코도 이 인도적 결정에 함께 하기로 한 것입니다. 카르데나스 대통령은 모렐리아에 있는 학교를 방문해 스페인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등, ‘모렐리아 아이들’에게 각별한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주요 멕시코 언론들은 전반적으로 스페인 아이들의 도착을 환영하고,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는 멕시코 국민들의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언론사들은 스페인 아이들의 도착을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습니다. 엑셀시오르 (Excelsior) 신문의 경우엔 ‘가여운 스페인 아이들’ (pobrecitos niños de la mi España)로 묘사했고, 456명의 아이들을 파시스트로부터 희생된, 그러나 카르데나스 대통령이 받아준 에피소드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게 있다면, 신문사 모두 아이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역사는 큰 사건 위주로 다뤄지기 때문에, 스페인 아이들이 멕시코에 도착했을 당시의 감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아마 대다수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것도 모른 채, 언제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 채 멕시코에 도착했을 거라 짐작됩니다. 각자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는 모른 채, 456명의 아이들은 하나의 ‘멕시코로 온 아이들'로 인식되어 멕시코 적응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68주년을 기념해 모인 모렐리아의 아이들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아이들 개개인의 이야기는 그들이 어른이 되고도 한참 지난 때가 돼서야 '모렐리아의 아이들: 23,296 ' ( 23,296 DÍAS DESPUÉS | LOS NIÑOS DE MORELIA)라는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상세히 전달됩니다. 그들은 익숙한 스페인 문화권을 벗어나 멕시코 토르티야를 먹고, 매일 급식으로 검은색  (프리홀레스)먹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던 기억, 멕시코 사회주의 찬양 노래를 틀어주던 기억, 스페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었던 웃픈 기억들을 떠올렸습니다.   명은 친구가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음에도, 해줄  있는  아무것도 없었던 힘든 날들을 기억하기도 했습니다.


456  멕시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페인으로 돌아간 아이들도 있었던 반면, 멕시코를 아예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내전이 끝나면 스페인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곧바로 2 세계대전이 터지며 많은 아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1945 전쟁이 끝난 뒤엔 그들 스스로 프랑코가 집권했던 암울한 스페인으로 돌아가길 거절했고, 심지어 멕시코에 남아 영원히 멕시코 시민이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비친 모렐리아 아이들 각자만의 ‘스페인에 대한 기억 흥미롭습니다. 많은 아이들은 프랑코 정권이 끝나고 나서야 40-50대의 나이로 스페인을 방문합니다. 많은  바뀌어있던 스페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스페인 사람임에도 ‘그곳에 속해 있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어렸을  머물던 도시 이름은 같지만,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다른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향에 돌아온 사실 만으로도 좋았다"라고 말합니다.


모렐리아의 아이들 다큐멘터리 (사진 자료: youtube)


이와 반대로, 몇몇 사람들은 수십  전과 똑같이 남아있는 공간에 서있게 됩니다.  아이는 어렸을  아버지와 지냈던 크리스탈 유리로  집을 이젠 주름 생긴 눈으로 바라보며, ‘이곳이  고향이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어렸을  기억 그대로인  공간에서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남아있다는 향수를 느꼈던 겁니다.


개인적으로 스페인 내전 역사는 아는  거의 었습니다. 스페인 내전 하면 전쟁터 모습과 헤밍웨이 정도만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렐리아의 456명의 아이들' 이야기는 스페인 내전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 스페인을 떠나 멕시코에 살게  아이들을 보면서,  역사적 사건 속에서 힘없이 바뀌는 개개인의 과 운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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