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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n 27. 2022

남미 독립운동과 신문의 역할


현대 사회에서 신문은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매체입니다. 물론 TV 뉴스나 유튜브 같은 대체 플랫폼이 많이 발달했지만, 신문 기사는 정보 전달에 있어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문은 오늘의 주제인 남미 독립운동 당시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색이 들어간 사진이 들어가 있다던가, 읽기 좋게 파트가 구성된 건 아니었지만, 당시 독립 운동가나 지식인들이 쓴 글을 최대한 많은 곳에 알리는 기능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은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 중 하나인 '오리노코 신문'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리노코 신문이 발간된 장소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스페인어로는 Correo del Orinoco, 영어로는 Orinoco Post라 불리는 오리노코 신문은 1818년 6월 27일 베네수엘라에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이 신문은 유명한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안드레스 로데릭 (Andrés Roderick) 장군과 함께 처음 설립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 발간된 이 주간지는 독립 전쟁에서의 승리를 널리 알려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독립운동 지지자들의 더 많은 참여를 얻어 내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1818년 6월 27일부터 1822년 3월 23일까지 총 133번 발간되는 동안, 오리노코 신문은 안토니 제아 (Francisco Antonio Zea), 헤르만 로스시오 (Juan German Roscio), 라파엘 레벤가 (José Rafael Revenga) 같은 독립 운동가의 사상이 담긴 글을 독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단순히 독립운동의 진행 과정을 알리는 정보성 글도 있었지만, 승리를 노래하는 시나 노래 같은 형식도 함께 실렸고, 스페인이 자유, 평등, 주권의 기본 원칙을 어떻게 억압해 왔는지 설명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또 스페인에 맞서 싸운 군인은 박애주의적이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영웅으로 묘사하는 반면, 스페인 왕정은 욕심 많고, 잔혹하고, 권위적인 집단으로 비판하며 독립운동을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오리노코 신문에 대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어 버전과 함께 영어, 프랑스어 판이 함께 발간됐다는 점입니다. 굳이 스페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도 발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썼던 카리브 국가 (자메이카, 아이티, 트리니다드 토바고 같은 나라들)도 독립 운동에 같이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또 미국과 유럽에까지 남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전해 국제적인 지지를 얻고, 왜 그들이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지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1818년 6월 27일 첫 신문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생각해보면 미국 독립 과정에서도 이런 신문이나 팸플릿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토마스 페인의 독립의 필요성을 담은 '상식' (Common Sense)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가 쓴 약 50장 분량의 짧은 글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 내에서 독립 여론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리노코 신문은 남미의 '상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광활한 중남미 대륙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독립 투쟁을 위한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수많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꼽을 수 있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처럼 오리노코 신문은 대중들의 심리적 투쟁심을 형성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94년, 베네수엘라 의회는 국가 최초의 신문이 만들어진 6월 27일의 역사적 가치를 이해하고 매년 이 날을 ‘베네수엘라 언론인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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