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는 남미에서 ‘미식의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년 발표되는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레스토랑 50’에서 페루는 항상 상위권 안에 속했는데, 2021년에는 리마에 있는 식당들이 1,2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또 국내 여행 블로그에서도 페루는 다른 중남미 나라보다 먹을게 많다고 소개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로모 살타도, 치파 (페루 중국 음식), 세비체, 타쿠타쿠 같이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페루에서 유독 식문화가 발달한 건 페루의 긴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잉카 제국 시절부터 발전해온 페루 음식은 이후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혼합된 음식이 탄생했습니다. 독립 이후에는 일본, 중국,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넘어오며 기존에 존재하던 페루 음식과 또 한 번 섞이게 됩니다. 수백 년 동안 다양한 레시피와 재료가 섞이면서, 페루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식문화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많은 음식 중에서 세비체 (Ceviche)는 페루를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생선회 조각, 양파, 레몬즙이 기본 베이스인 세비체는 새콤한 맛이 우리나라의 회무침과도 약간 비슷한데요. (물론 세비체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매콤한 맛은 없습니다.) 한국의 김치가 무형문화유산인 것처럼 세비체도 페루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매년 6월 28일을 ‘세비체의 날’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비체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의 세비체 재료와는 다른 점이 많았던 걸 알 수 있습니다. 세비체의 기원은 잉카 제국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모치차 문화(200-300년 경)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데요. 모치차인들은 지역 과일인 툼보 (tumbo)에서 과즙을 얻어 생선회와 함께 섞어 먹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14세기 잉카 사람들은 회를 알코올 음료인 치차와 함께 담가 먹었고, 스페인 사람들이 정착한 뒤로는 양파, 옥수수, 양상추와 다진 파슬리를 넣어 지금의 세비체와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리하는 방식이 달라졌던 것처럼, 페루 각 지역에 따라 레시피나 사용하는 재료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 세비체는 그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파이체, 도라도 같은 물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사이드로 바나나 튀김을 이용해 즐겨 먹고 있습니다. 안데스 지역에서는 주로 즐겨먹는 송어로 세비체를 만들어 먹고, 북부 지역에서는 가래상어를 말려 오징어채처럼 요리하거나 조개가 들어간 검은색 소스 세비체 (Ceviche de conchas negras)를 먹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세비체는 스페인, 에콰도르, 멕시코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연구가들은 16세기경 페루를 점령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비체를 점차 다른 지역으로 전파 시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는 세비체는 단어 표기도 제각각입니다. 지역에 따라 cebiche, ceviche, sebiche, seviche 총 네 가지 형식으로 쓰고 있는데, 왕립 스페인 아카데미는 모두 공식 스페인어 단어로 승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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