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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11. 2022

베네수엘라에 있는 '광화문 느낌'의 광장 이야기

베네수엘라의 랜드마크 프랑스 광장의 역사


오늘의 주제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한 광장에 대한 알쓸신잡 이야기입니다. 1945년 8월 11일에 만들어진 프랑스 광장은, 가운데는 오벨리스크와 계단 사이에 있는 분수가 매력적인 곳입니다. “굳이 베네수엘라 광장까지 알아야 되나?”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중요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주목을 받았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광장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커먼즈) 


우선 맨 처음 광장이 생기게 된 이유는 베네수엘라 도시 루이스 로체 (Luis Roche)라는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고 아마추어 영화감독도 하며 다재다능함을 보였던 로체는, 수도 카라카스에서도 알타미라 지역에 땅을 많이 사놓은 부자였습니다. 도시 계획자이기도 했던 그는 1940년대에 들어 애정이 많던 알타미라를 ‘카라카스의 랜드마크’로 만들고자 했고,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 광장 건설이었던 겁니다.


확실히 눈에 띄는 건축물을 원했던 로체는 우선 광장 중심지에 오벨리스크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오벨리스크 높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당시 가장 높고 규모가 큰 카라카스 성당보다 더 높은 오벨리스크를 만들어야 알타미라가 더 주목받게 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졌고, 광장에는 높이 45미터의 하나의 날카로운 검 같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지게 됩니다. 


광장 초기 모습 (사진 자료: lapatilla)


처음 광장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이름은 지역 명칭 그대로 알타미라였습니다. 그러다가 1967년이 돼서야 프랑스 광장으로 불리게 됐는데요. 파리와 카라카스가 자매결연을 맺게 되면서 카라카스엔 프랑스 광장을, 반대로 파리에는 베네수엘라 광장을 세우기로 합의하면서 이름이 바뀌게 된 겁니다. 한편 광장은 오벨리스크 이외에도 산 후안 보스코, 미란다 같은 주요 대로들이 이곳을 통과하게 되면서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도심 주요 교통지로 자리 잡게 됩니다. 


프랑스 광장이 베네수엘라 역사에서 중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표출되는 장소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광화문’이 그런 공간적 역할을 했다면, 베네수엘라에서는 프랑스 광장이 시민들이 모이게끔 하는 공간을 제공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2022년 석유회사 PDVSA 국영화에 대한 반대 시위나 2014년과 2017년 부정선거와 독재를 비판하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프랑스 광장은 항상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건축가 라울 파올리니는 이를 두고 “프랑스 광장은 부자와 가난한 자 상관없이 모든 시민의 만남이 이뤄지는 곳이다. 차별 없이 모두를 받아들이는 장소다.”라고 말하며 광장이 가진 특성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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