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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16. 2022

계속된 외세 침략에 시달렸던 도미니카공화국의 역사


도미니카공화국의 독립 기념일은 1844년 2월 27일입니다. 1822년부터 또 다른 히스파뇰라 섬나라인 아이티의 지배에서 벗어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렇게 자치권을 찾으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지만, 도미니카공화국은 자신들 배만 채우기 바빴던 정치인들에 의해 여러 번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또 아이티를 몰아내긴 했지만, 당시엔 강국이었던 아이티가 경제 제재를 감행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의 정세는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1861년이 되자, 도미니카공화국 장군 중 한 명인 페드로 산타나 (Pedro Santana)는 스페인에게 도미니카공화국을 합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에나벤투라 바에즈가 엉망으로 나라를 통치하느니, 스페인의 지배 아래에 다시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이는 도미니카공화국이 독립을 했음에도, 여전히 스페인을 지지하던 세력이 남아있단 걸 보여줬던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은 곧바로 이 달콤한 요청을 승낙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도미니카공화국을 발판으로 옛 제국 시절의 영광을 다시 누리고 싶어 했지만, 먼로 독트린을 발표한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다행히 그때 미국에선 남북전쟁이 터지며 카리브 지역까지 신경 쓸 수 없게 되고, 이로써 스페인은 제일 먼저 식민 도시가 세워졌던 도미니카공화국을 재점령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나라가 엉망이어도, 스페인의 통치는 너무하다"고 외치던 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스페인을 몰아내기 위해 1863년 8월 16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후 1865년까지 이어졌던 이 전쟁은 ‘제도나 체제를 새롭게 한다는 뜻’에서 도미니카 유신 전쟁 (Restoration War)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됩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산티아고 로드리게스 장군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곳곳에 주둔해 있던 스페인 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스페인 군대가 화력 면에서 앞섰고 친스페인파 페드로 산타나의 지원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의 승리로 전쟁이 끝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와는 전혀 다른 전개가 펼쳐지게 됩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웠던 스페인 본국에서 전쟁 지원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그나마 파병된 스페인 병사들은 말라리아와 황열병에 걸리며 싸우기도 전에 큰 피해를 입었던 겁니다. 


결국 2년 동안 이어진 유신 전쟁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는 여전히 스페인 식민 통치 아래 머물고 있던 다른 카리브 섬나라들 (쿠바, 푸에르토리코)에게 영감을 줬고, 도미니카 공화국 국민들에게도 애국심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 독립 -> 아이티 합병 -> 독립 -> 스페인 통치 -> 독립이라는 다소 복잡한 역사를 겪은 도미니카공화국은 이번 전쟁을 끝으로 외세의 침략 없이 주권을 유지했습니다. 다만 국내 정치는 여전히 불안정했고, 여러 정치인들이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지 못하며 여러 번 위기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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