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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Aug 25. 2022

'남미의 스위스' 우루과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매년 8월 25일은 우루과이의 독립 기념일입니다. 1825년 8월 25일 각 주 대표들이 플로리다 의회 (Congreso de la Florida)에 모여 독립을 선언한 날을 기념일로 정한 건데요. 오늘은 중남미를 통틀어 가장 선진국으로 꼽히기도 하는 우루과이의 독립 과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루과이 독립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보다는 ‘협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페루 같은 다른 남미 국가들은 스페인과의 치열한 전쟁 끝에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스페인 제국의 영향력이 컸으므로, 그만큼 세력 다툼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비교적 외지에 속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물론 몬테비데오나 콜로니아가 항구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리마, 카르타헤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같은 항구보다는 스페인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루과이는 독립 과정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쟁보다는 리오 델라 플라타 연합 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나라의 충돌을 막기 위해 탄생하게 된 특징이 있습니다. 



우루과이 독립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과라니어로 ‘새의 강’을 뜻하는 ‘우루과이’라는 국가명은 사실 완전한 독립을 이룬 1830년 이전까지 역사 속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우루과이 강 동쪽, 라 플라타 강 북쪽에 위치한 반다 오리엔탈 (Banda Oriental)이란 명칭을 가진 지역이었습니다. 독립이 한창 진행되면서 우루과이의 해방자로 불리는 아르티가스 (Artigas)는 지역 이름을 Banda Oriental에서 Provincia Oriental로 바꾸고, 자치성을 유지한 채 리오 델라 플라타 연합 주 쪽에 속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곧바로 저항을 받으며 저지되고 맙니다. 1817년, 라 플라타 지역을 탐냈던 포르투갈은 오리엔탈 지역을 점령하며 아르티가스를 저지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포르투갈이 물러가고 브라질이 독립을 한 뒤에도 계속됐는데요. 이에 오리엔탈 지역 출신 33인은 라바예하 (Juan Antonio Lavalleja)의 주도 아래 브라질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이들은 8월 25일 몬테비데오 플로리다 의회에 모여 포르투갈, 브라질을 비롯한 외부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국임을 선언했고, 이후 이 날은 우루과이의 독립 기념일로 제정됩니다. 


한편 우루과이의 독립 선언은 어딘가 애매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1825년 독립을 선포하긴 했지만, 리오 델라 플라타 연합 주에 속하려는 내용도 함께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문화가 비슷했고 두 나라를 구분 짓는 국가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독립에 대한 인식은 더욱 모호해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완벽한 독립은 1828년 영국이 제재자로 나서 열리게 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평화 협약 (Convención Preliminar de Paz)에 의해 마무리됩니다. 일 몬테비데오 조약이라고도 알려진 이 협상에서 양국은 회의를 거쳐 우루과이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완전한 자주국으로 인정할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렇게 거대 국가 사이에서 꽤 오랜 시간 모호한 위치에 있던 우루과이는 진정한 독립국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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