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는 중남미에서 유달리 정치 스캔들에 분노한 시위가 많았던 때였습니다. 브라질 탄핵 시위 (2013), 멕시코 시위 (2016)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시위가 벌어진 이유는 사회가 더 이상 공정하지 못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제 '과테말라 전국 파업 시위' (Paro Nacional en Guatemala de 2015)도 정치 스캔들에 반대하는 시위 중 하나였습니다. 2015년 8월 27일에 벌어진 이 사건은 과테말라 역사상 가장 큰 시위로 기록됐으며, 약 17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도 과테말라시티를 비롯해 안티구아, 산 아구스틴, 쿠불코 같은 주요 도시 곳곳에서 벌어졌고, 동시에 SNS에서도 반정부 시위를 벌이며 고장난 민주주의에 대한 변화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2015년 과테말라에서 시위가 일어난 이유는 과테말라 대통령이 정점에 있는 거대 정치 스캔들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과테말라 검찰과 유엔 산하 과테말라 반면책 국제위원회는 오랜 시간 동안 정치인들과 기업 간의 비리를 조사했고, 국세청장을 포함한 공무원 26명이 수입업체의 세금 감면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밝혀냈습니다. 또 사건을 파헤치면서 발데티 부통령과 오토 페레즈 몰리나도 엄청난 액수의 뒷돈을 받았다는 정황을 파악했는데요. 이에 국민들은 실망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고 곧바로 그의 퇴진을 요구하게 됩니다.
한편 명백한 증거에도 몰리나 대통령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약 7개월 남은 자신의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은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끌어올렸고, 사임 요구를 더욱 격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론은 악화됐고, 자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을 깨달으며 2015년 9월 3일 공식적으로 사임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의 사임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테말라의 민주주의 제도가 어느 정도 작동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9월 1일. 의회는 찬성 132표, 반대 0표로 페레스 몰리나의 면책을 박탈시키며 입법부를 통한 행정부 비리 수사를 가속화했습니다. 또 시민 사회, 학생, 예술인, 기업인 등 거의 모든 계층에서 그에게 사퇴를 요구했고, SNS에서는 #나는 대통령이 없다 (“yo no tengo presidente”)같은 문구를 공유하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여론뿐만 아니라 정치 제도적으로도 입지가 좁아진 몰리나 대통령은 결국 조기 퇴임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 과테말라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전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였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과테말라에서 민주주의가 도입되기만 해도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군부 정권과 독재가 워낙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정부패나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며 민주주의 시스템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사람들은 그 다음 단계로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을 원하게 됐습니다. 2015년 스캔들이 밝혀지자 과테말라 국민들은 더 이상 부정부패를 눈감아 주지 않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일으켜 결국 자신들이 뽑았던 대통령을 사임 시키기까지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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