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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Sep 07. 2022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원했던 진짜 이유

9월 7일 브라질 독립기념일


남미 대륙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브라질. 매해 9월 7일은 브라질의 독립 기념일입니다. 특히 2022년은 독립 기념일 200주년을 맞아 의미가 더욱 남다른데요.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브라질의 독립 과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처럼, 브라질은 3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다른 남미 대륙이 대부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포르투갈이냐, 스페인이냐만 달랐을 뿐 브라질도 다른 남미 지역처럼 많은 자원들을 포르투갈로 넘겨줘야만 했습니다. 포르투갈은 목재, 사탕수수, 목축, 은 같은 자원을 모두 가져가면서 많은 이익을 었얻고, 브라질로부터 많은 이익을 취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나폴레옹이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침략하면서 180도 바뀌게 됩니다. 카라카스, 부에노스아이레스, 보고타 같은 스페인 부왕령에서 독립 투쟁을 시작했듯이, 식민 지배/피식민지 관계가 뚜렷했던 브라질과 포르투갈 관계도 변하게 된 겁니다. 1808년 주앙 6세를 포함한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로 이동했고, 1815년에는 브라질을 왕국으로 승격시킴으로써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을 구성했습니다. 이로써 브라질은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닌 포르투갈과 동등하게 중요한 왕국으로 지위가 상승했던 것입니다. 


국내외 정치가 급격하게 바뀌자, 브라질 사회도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됩니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에 신문과 책 인쇄를 허가했고, 의과대학, 군사 사관학교, 은행도 설치하며 문화, 경제, 교육이 발전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이외에도 식물원, 예술 아카데미(Escola Nacional de Belas Artes) 및 오페라 하우스(Teatro São João)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모든 조치는 브라질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한 단계 진전 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유럽에서의 상황은 잠잠해졌습니다. 나폴레옹은 패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전의 지위를 되찾았는데요. 그렇게 되자 주앙 6세를 비롯한 포르투갈 왕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을 해제했고 브라질을 다시 식민지 지위로 돌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포르투갈의 이런 결정에 반대했습니다. 잠시나마 자유를 누렸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앙 6세 대신 브라질에 남았던 페드루 1세는 1822년 9월 7일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고, 직접 황제 자리에 즉위하며 322년간의 포르투갈 지배를 종식시켰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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