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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Sep 22. 2022

아르헨티나-브라질 연합군을 전멸시킨 파라과이

(쿠루파이티 전투 이야기) 


삼국 동맹 전쟁은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연합하여 파라과이를 상대로 일으켰던 전쟁입니다. 파라과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남미에서는 페루, 볼리비아, 칠레가 맞붙었던 태평양 전쟁과 더불어 가장 많은 피해가 났던 전쟁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삼국 동맹 전쟁 중 벌어졌던 여러 전투 중 쿠루파이티 전투에 (Batalla de Curupayt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쿠루파이티 전투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국립 박물관을 방문하면, 예술가 로페스 칸디도 (López, Cándido)가 그린 여러 작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칸디도는 대략 가로 1m 50cm, 세로 길이 50cm 공간에 넓은 팜파스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 장면을 인상 깊게 그려놓았는데요. 치열했던 전투 장면, 그리고 모든 싸움이 끝난 뒤에 모습을 담았는데, 바로 이 그림에서 묘사한 순간이 삼국 동맹 전쟁 초기에 벌어졌던 쿠루파이티 전투였습니다.


1866년 9월 22일 벌어진 이 전투는 파라과이에게는 영광의 순간, 동맹국에게는 끔찍한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호세 디아즈 장군이 이끌었던 파라과이는 쿠루파이티 요새를 지키기 위해 미리 참호를 파놓고 방어태세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파라과이의 군사가 5천이었던 반면, 연합군은 숫적으로 훨씬 우세한 약 2만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쿠루파이티 쪽으로 빠르게 전진했습니다. 동맹국의 주요 전술은 파라과이 강에서 함대를 동원해 먼저 포격을 가한 뒤, 약해진 쿠루파이티 요새를 육지에서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해군과 육군 모두 압도했기 때문에, 전투는 동맹국의 승리로 빠르게 끝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쿠루파이티 전투 (사진 자료: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들의 전략은 초반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함선들은 요새에 설치된 대포의 사격 거리를 피해야 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조금 더 떨어진 거리에서 발포를 시작했습니다. 정확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파라과이 군대에게 큰 위협을 줄 수 없었습니다. 


동맹국의 계획은 육지에서도 똑같이 틀어지고 있었습니다. 전투 직전 내린 비 때문에 땅의 습기와 초목은 기병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포병대 또한 느리게 진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맹국은 이미 유리한 위치에서 발포 준비를 하고 있던 파라과이 군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며 후퇴하게 됩니다. 


"그것은 지옥불이었다.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졌고, 사람들은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 대포의 폭발이 멈추지 않아서 우리는 마치 끝나지 않는 천둥에 둘러 쌓인 것 같았다.” (루시오 만시야)


흔히 삼국동맹을 이야기할 때, 파라과이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물론 6년간 벌어진 이 전쟁은 동맹국의 승리로 끝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쟁 초반에는 파라과이가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쿠루파이티 전투에서의 승리였습니다. 반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쿠루파이티에서 예상치 못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회복을 위해 전쟁 속도를 늦츨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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