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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Sep 23. 2022

푸에르토리코 역사의 중요한 순간: 라레스의 외침


중남미 국가들이 대부분 1820년대에 독립을 이뤘던 반면, 캐리비안 바다에 위치한 국가들은 독립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프랑스 지배를 받았던 아이티가 가장 먼저 독립을 이뤘지만, 그 영향력은 도미니카공화국이, 푸에르토리코, 쿠바 같은 이웃 나라로까지 이어지진 못한 것입니다. 


1868년 9월 23일. 지금은 미국 자치령이기도 한 푸에르토리코에서 라레스의 외침 (Grito de Lares)으로 불리는 독립운동이 일어납니다. 참고로 멕시코의 독립 시작을 알린 돌로레스의 외침 (Grito de Dolores)과 같은 단어 Grito가 쓰인 걸 알 수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서부에 있는 라레스 (Lares) 지역에서 시작되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 독립운동은 곧바로 많은 푸에르토리코 전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게 됩니다. 


많은 시기 중에 하필 1868년인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칠레-페루와 전쟁을 벌이며 남미 지역에서의 패권을 재건하려 했습니다. 동시에 여전히 식민 지배를 하고 있던 쿠바에서는 거센 노예 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는데요. 이렇게 중남미 이곳저곳 군사를 투입할 필요가 생기자 경제적 지원이 필요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푸에르토리코 같은 식민지에서 세금과 관세를 높이는 형식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스페인의 부당한 조치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라레스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푸에르토리코 국기 (사진 자료: knowing puerto rico)


이 독립운동은 약 50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시작됐습니다. 프란시스코 메디나가 독립운동 전체를 이끌었고, 마누엘 로하스는 군사 작전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들은 스페인 출신이 운영하는 마누엘 로하스 농장을 습격하는 것으로 저항의 시작을 알렸고, 곧바로 마을 교회를 점령하여 그곳에 푸에르토리코 국기를 올렸습니다. 하얀색 십자가를 두고 위에는 파란색, 아래에는 빨간색, 그리고 왼쪽 상단에 하얀 별이 그려진 이 국기는, 푸에르토리코 최초의 국기이자 독립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한편 독립군은 다음 목적지를 산세바스티안 델 페피노로 정하고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강했던 스페인군의 저항에 고전했고, 결국 대부분이 사로잡혀 처형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라레스에서의 독립은 빠른 시간 내에 끝났지만, 이 소식은 아드훈따스, 우뚜아도, 바야몬 같은 지역으로 퍼져나가 또 다른 독립 시위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라레스의 외침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이 남긴 유산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컸습니다. 스페인 당국은 또 다른 반란을 막기 위해 푸에르토리코에 정치적 자치권을 부여하는데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라레스의 외침이 일어났던 9월 23일은 푸에르토리코의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라레스는 독립의 시작점점이 된 도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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