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티너리 Oct 08. 2022

'페루의 이순신'으로 불리는 그라우 제독 이야기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이순신 장군은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불리한 전쟁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본의 침략을 막아냈던 그야말로 ‘난세의 영웅’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페루에도 ‘페루의 이순신’이라 불리며 기억되는 인물이 있는데, 오늘의 주제는 그 주인공인 미겔 그라우 제독의 이야기입니다.

   

1879년 4월. 당시 페루는 볼리비아와 연합하여 칠레와의 태평양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아타카마를 포함한 북쪽의 넓은 땅을 두고 두 세력 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인데요. 많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쪽 파타고니아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군사 경험이 많은 칠레가 승리할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수의 예상을 뒤엎은 인물이 바로 그라우 제독이었습니다. 그는 와스카르 (Huascar)호를 직접 지휘하며 칠레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했고, 무려 6개월 동안 칠레 해군의 진격을 지연시켰습니다. 그의 주요 전술은 칠레 함대에 몰래 접근해 타격을 준 뒤 달아나는 게릴라식 전략이었습니다. 워낙 조용하고 빠르게 접근했기 때문에 칠레 측에선 그라우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며 두려워했고, 반대로 페루에서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난세의 영웅이 나타났다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미겔 그라우 제독 (사진 자료: el comercio)


그라우 제독은 여러 활약을 펼쳤지만, 가장 하이라이트는 이키케 전투였습니다. 4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에서 와스카르호는 칠레의 코르벳함 에스메랄다를 격침하며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전쟁에서 칠레 제독 아르투로 프랫은 목숨을 잃었고, 많은 칠레 병사들이 바다에서 표류하게 됐습니다. 이 모습을 본 그라우 제독은 칠레 병사 50여 명을 바다에서 구출해줬으며, 또 프랫의 아내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무리 적이긴 했지만, 그의 이런 신사적인 행동은 칠레 사람들에게까지 존경받게 됩니다.


1879년 10월 8일. 벼르고 벼르던 칠레 함대는 순찰을 진행 중이던 와스카르 호를 에워싸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가를 앙가모스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수세에 몰린 그라우 제독은 이 전투에서 결국 적의 포탄에 맞아 사망했고, 무적이나 다름없던 와스카르호도 침몰하게 됩니다. 앙가모스에서의 결정적인 승리로 칠레군은 자신들의 태평양 연안을 자유롭게 통제했고, 그라우 제독 마저 사라지자 아무 문제없이 페루로의 상륙작전이 시작됩니다.


비록 페루는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바다의 신사 (Caballero de los Mares)라 불리는 그라우 제독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페루에선 앙가모스 전투가 일어난 10월 8일을 공휴일로 정해 그라우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고, 페루 의회는 그에게 대제독이란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또 제일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설문 조사 때마다 많은 페루 사람들이 그라우 제독을 꼽으며, 백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페루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대통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