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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Nov 15. 2022

역사 속으로 사라진 브라질 군주제


1889년 11월 15일. 브라질은 정치 역사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1822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브라질은 이후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는 이른바 군주제를 받아들였는데요. 페드루 1세와 2세가 60년 넘게 지배해온 브라질은 1889년을 기점으로 군주제가 끝나고, 공화제를 기반으로 한 국가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큰 문제없이 이어져왔던 군주제가 몰락한 건 복잡한 경제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대농장을 기반으로 한 브라질의 경제 산업은 어쩔 수 없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의 핵심이었기에 브라질은 서구권에서 노예 제도를 가장 마지막까지 유지했지만, 페드루 2세는 많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1888년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곧바로 많은 엘리트와 농장 대주주들의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군주제 폐지를 논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가 됐습니다.


두 번째로, 진보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세력들은 브라질의 더딘 발전의 원인을 군주제에서 찾았습니다. 이들은 카스트 제도나 다름없는 군주제가 브라질의 높은 불평등과 문맹률을 야기하고, 유럽과 같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선 공화제를 기반으로 발전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군주제는 과거를 대표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브라질에도 더 많은 자유를 제공하는 공화제를 받아들여 새로운 사회 개혁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전통적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컸던 교회나 파라과이와의 전쟁 이후 세력을 확장한 군 내부에서도 군주제를 비판하는 입장을 냈습니다. 결국 브라질의 정치인이자 군인 출신인 데오도로 다 폰세카(Deodoro da Fonseca)를 중심으로 '공화주의자' 군대가 결성되었고, 1889년 11월 15일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페드루 2세를 폐위시키기에 이릅니다. 물론 군주제에 찬성하는 세력도 있었기에 브라질 전역에서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른바 브라질의 '제1공화국'은 1930년 바르가스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 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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