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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Dec 06. 2018

아르헨티나의 카우보이, 가우초의 날


아르헨티나는 1993년부터 매년 12월 6일을 가우초의 날 (Día Nacional del Gaucho)로 지정해 그들의 오래된 역사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가우초는 스페인어 사전에 목동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아르헨티나에서는 넓은 초원 팜파스에서 목축업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카우보이와도 자주 비교되는 가우초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전통과 문화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우초 문화가 발전한 계기는 유럽으로부터 넘어온 이민자들이 팜파스에 거주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드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은 사실상 법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또 소가죽을 밀매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18세기 스페인 정부는 가우초를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골칫덩이’로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 당시 가우초는 혁명군을 도와 스페인군과 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초원 지대에서 말을 타고 생활했기 때문에 스페인 군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아르헨티나 지형을 워낙 잘 알고 있었으므로 스페인과 벌인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아르헨티나 독립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른 뒤 가우초는 아르헨티나 정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할 사람들'로 낙인찍혔습니다. 아르헨티나는 그들이 방랑자보다는 법을 지키며 생활하길 원했고, 또 가우초 문화 자체를 오래되고 야만스럽고 열등한 것으로 보며 그들을 차별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가우초들에게 동정심을 느낀 작가 호세 페르난데스는 ‘가우초 마르틴 피에로’라는 서사시를 출판하며 가우초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시는 훗날 아르헨티나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게 됐고, 훗날 가우초의 날이 12월 6일이 된 것도 '가우초 마르틴 피에로'가 출판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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