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티너리 Dec 21. 2018

칠레에서 벌어진 산타 마리아 학교 학살 사건


1907년 12월 21일, 칠레 타라파카 (Tarapacá) 지역에서 산타 마리아 학교 학살 (Santa María School massacre)이 일어났습니다. 시위를 벌이던 칠레 초석 광부들이 정부군의 진압으로 희생당한 사건이었는데요 이로 인해 약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고,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잊힌 사건이 되고 맙니다. 


역사적으로 칠레는 최대 구리 생산 국가로 유명했지만 동시에 초석 (Nitre)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이기도 했습니다. 19세기말 칠레는 전 세계 초석 시장을 독점해 초석 수출을 통해 많은 수익을 얻었습니다. 이때 기업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태도를 취했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광산이란 고된 환경 속에서 일하면서도 낮은 임금만 받고 일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도 근무 환경이나 임금이 전혀 개선되지 않자 대규모 파업을 결정했고 산타마리아 학교에 모여 집회를 열며 페드로 몬트 대통령을 압박했습니다. 


광부들의 파업 소식을 들은 칠레 정부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페드로 몬트 대통령은 로베르토 레나드 장군을 보내 상황을 정리하라 지시했고, 필요시 무력 사용을 허용했습니다. 시위대가 해산할 것을 거절하자 칠레 군대는 무자비한 발포를 시작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광부들을 포함한 그들의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들은 정부의 외면 속에 철저히 잊혔지만, 100년이 지난 2007년 바첼레트 정부에 의해 국가 추모식이 열리고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하루 5분 중남미 역사상식 매거진에서는 그날 벌어졌던 역사를 다룹니다. 매일 알쓸신잡st 글을 통해 중남미의 시시콜콜한 역사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의 부시 대통령, 파나마 침공을 결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