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한 학년에 20반까지 있었다. 90년대 초반이라 학령인구가 많기도 했고 학교 규모도 컸다. 한 반 정원이 50명을 넘었으니 동기만 해도 1,000명 이상이었다.
벌써 30년 너머의 일, 게다가 그 많은 얼굴 중에서 유독 기억나는 친구가 있다. 흔히 '풍채 좋다'는 표현이 딱 맞는 녀석이었다. 덩치도 컸고 항상 웃는 얼굴로 성격이 아주 밝았다. 공부도 잘 했다.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일이어서 그 친구 주변은 늘 붐볐다. 요즘 말로 인싸 중의 인싸였다. 같은 반인 적은 없지만 어쩌다 나와도 안면을 터서, 마주치면 서로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 정도는 되었다. 그 친구가 아는 척을 해 주면 약간 뿌듯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의 모교는 야구 명문이었다. 고교 야구의 열기가 남아 있던 때다. '황금사자기', '봉황대기'같은 대회가 열리면 동대문 야구장에서 전교생이 응원에 나섰다. (지금은 그 자리에 동대문 DDP가 들어섰다.) 애교심이 얼마나 강했던지, 졸업 후에도 한두 번은 동대문 야구장을 찾았다.
그 때에도 그 친구를 보았다. 응원을 제대로 하려면 대규모 음향시설이 필요한데, 이걸 빌리고 설치하는 돈이 엄청나다. 그런데 사람도 거의 없는 외야석 저편에서 스피커를 잔뜩 쌓아 놓고 그 친구 혼자 응원을 펼치고 있었다. 얼핏 듣기로는 그 음향시설을 전부 자기 돈으로 설치했단다. 대단하지 않은가. 고작 대학교 1학년이,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야구 응원을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스피커를 설치하고, 사람도 없는 데에서 혼자 응원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난 놈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꽤 시간이 흐른 후 그 친구가 부동산 관련 일을 하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감옥에 다녀 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안타깝기에 앞서 '그 녀석 답다' 싶었다. 부동산이라니, 뭔가 통이 커 보이지 않는가. 일을 벌여도 크게 벌일 놈이었다. 대학 1학년 때 사비로 그런 응원을 펼친 놈이니 스케일은 진작 알아 봤던 셈이다.
다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요사이 뉴스에서 그 유명한 '대장동 사건' 보도에 그 친구 이름이 스쳤다. 설마? 동기들에게 물어 보니 맞는 것 같다는 얘기가 돈다. 놀람 뒤에 퍼뜩, 그러면 동대문 야구장의 그 응원도, 어쩌면 사람들을 연결하고 돈을 모아 펼친 그의 비즈니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모교사랑이 넘치던 분위기였으니 응원을 대행하겠다고 하면 동문들도 기꺼이 지갑을 열었으리라. 대학 1학년 치고는 기가 막힌 사업감각이 아닌가.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정말 '단단히' 난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