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환 Aug 05. 2022

[오늘의 私설] '직업=나' 인가?


 동호회같은 곳에서 자기소개 시간이 되면 대개 이름, 나이, 직업으로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홍길동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36살이구요, 은행원이에요." 본디 남들이 하면 안 하고 싶은 심보가 있어, 나는 색다른 소개로 주목을 노렸다. "안녕하세요, 김정환입니다. 꽃을 좋아하구요, 혼자 여행하면서 글 쓸 때 행복해요." 어딜 가나 튀는 놈은 있다.


 관종병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규정하는 것이, 말하자면 나의 대표 캐릭터가 직업이어야 한다는 게 마뜩치 않다. 물론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벌기도 하고 쓰기도 하는 삶에서, 굳이 버는 걸로 자기를 규정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사자에게 자기소개를 청했다 치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심바에요. 3살이구요, 얼룩말을 먹고 살아요." 얼룩말에게 요긴한 정보이긴 하겠다만, 글쎄.


 간혹 '직업'이 '자기'와 일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훈아 같은 분이다. 가끔 삼성가(家)가 집안 잔치에 가수를 초대하는데, 노래 두어 곡에 수천만 원을 준단다. 다들 못가서 안달일 때 나훈아만은 딱 잘라 거절했다고 한다. "나는 대중가수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표를 사서 내 공연장에 와라." 정체성과 직업의 일치에서 뿜어나오는 카리스마다.


 나는 없다. 직업을 밝힐 때 눈에서 빛을 뿜지 못한다. 그렇다면 굳이 밥벌이로 나를 규정할 이유도 없겠다. 나훈아는 존경스럽지만 흔하지 않아 존경스러운 것이다. 직업과 존재가 겉도느니, 꽃을 좋아하는 '꽃돌이'나 여행과 글을 좋아하는 '한량' 따위가 내게는 더 잘 맞고 당당한 옷이다. "안녕하세요, 김정환입니다. 꽃을 좋아하는 한량이에요." 없어보이기는 해도, 무해하고 떳떳하다.   

  


작가의 이전글 [노래공감] 이승환, <덩크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