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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說] 현 탄핵정국의 가장 큰 문제

by 김정환


세상의 모든 주장은 보기에 따라 다 말이 된다. 그래서 주장 자체보다 근거의 타당성이 중요하다. '외계인이 피라밋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그게 말이 되려면 큼직한 두개골을 내 놓든 UFO 트랙터를 발굴하든 증거를 보여야 한다.


그나마 외계인이 있는지 없는지처럼 사실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결판을 내기가 쉬운 편이다. 가치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논쟁은 다르다. 어떤 사람에 대해 '정치를 잘 했다' 또는 '잘 못했다'는 논쟁이 벌어졌을 때 그러한 다툼은 증거의 등장으로 쉽게 끝나지 않는다. 가치는 의미와 해석의 영역이다. 가치 논쟁을 벌이는 이들의 마음 밑자락에는 물증 따위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깔려 있다. 그러니 'A는 훌륭한 대통령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가 저지른 온갖 악행을 들이댄들, 상대방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 '악행'은 손쉽게 '선행'으로 해석된다. A를 최악의 대통령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가치의 영역에서 논쟁이 지속될 때는 상대방과 내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현재 다툼의 수준보다 한 차원 높은 가치를 해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면 리더를 선출하는 시스템 자체, 국민 다수의 견해가 '일반의지'로 간주되는 체제,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수결에 승복해야 한다는 믿음처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치'가 A를 둘러싼 가치 논쟁을 정리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즉 '사실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논쟁을 그보다 더 낮은(구체적인) 수준의 증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면, '가치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논쟁은 그보다 더 높은(추상적인) 가치에 비추어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갈등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상위가치, 즉 헌정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적법 절차를 부정하거나 헌법기관을 위협한다. 폭도들이 법원을 박살내고 관청에 난입해 위력을 행사하는 것의 폐해는 시설물의 복구 비용이나 경찰관 몇 명이 다쳤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헌정질서는 구성원이 공유하는 하나의 믿음체계다. 그러므로 헌정질서가 훼손되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그에 대한 구성원의 심리적 신뢰 역시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 어떤 가치도 판단의 준거가 될 수 없는 상태, 그 결과는 폭언과 폭력이 지배하는 야만의 정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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