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차 : 판교에서 서울역까지

2018년 12월 27일

by 김정환


마지막 날이다. 일찍부터 짐을 챙기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옆방(정확히 말하자면 옆칸)에서 짜증 섞인 한숨소리를 낸다. 최대한 조용히 마사지샵을 나선다. 8시가 조금 넘었다.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졌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그러고 보면 출발했던 12일부터 어제까지는 그다지 큰 추위가 없었다. 마지막 날 하루쯤이야 견딜 만하다. 이번 여행 동안 날씨 운은 정말 좋았다.


판교의 아침


판교 테크노벨리 옆으로 지나는 길이 '대왕판교로'다. 이름이 거창하지만 '대왕면'과 '판교'에서 따 왔다. 이 길을 따라 북상하면 서울공항(성남비행장)을 지나 수서로 이어진다. 나는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하게 이어질 샛길로 향한다. 양재를 거쳐 한양으로 향하던 영남대로의 흔적, 달래내길이다.


'서울, 양재'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달래내길로 이어진다.
달래내길은 왕복 2차로 가량의 좁은 길이나 오랫동안 영남대로의 길목 역할을 해 왔다.


해는 떴지만 기온은 더 낮아진 느낌이다. 아직은 지표를 데울 만큼 햇볕이 강하지 않다. 게다가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더욱 떨어졌다.


걸은지 한 시간째, 마침 바람을 피할 만한 버스정류장이 눈에 띈다. 온실효과 덕에 비교적 아늑하다. 가방에서 빵을 하나 꺼내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경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기가 그 유명한 '달래내 고개'다. 경부고속도로의 상습 정체구간 달래내 고개는 이곳의 이름을 빌려다 쓰는 것이다.


한양을 떠나 동래로 향하는 영남대로상 첫 번째 고개이자 한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오늘날 경부고속도로를 오가는 운전자들에게 달래내 고개는 대략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 역할을 한다.



고개 정상에 서자 바람이 세차게 분다. 멀리로 서울의 빌딩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가에 달래내 고개와 영남대로를 소개하는 표지판이 서 있다. 미소를 띠고 표지판을 지그시 읽는다.





드디어 서울의 표지가 나타났다. 오전 9시 50분, 서울로 진입한다.



사실 나는 이 근방 지리에 매우 익숙하다. 95년 4월부터 96년 10월까지 서초구청 공원녹지과에서 공익근무요원 활동을 하면서 청계산을 내 집 드나들듯 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 청계산의 주요 등산로 입구들이 연결되어 있다.



청계산의 명물 느티나무다. 수령은 200년 정도 되었다. 느티나무 주변에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꽤 있지만 10시를 갓 넘긴 터라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다.



다행히 24시간 해장국집이 있다. 추위에 지친 나그네에게 팔팔 끓는 해장국은 음식이자 위로다.



몸이 데워진 것도 잠깐, 식당을 나와서 불과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못견딜 만큼 찬바람이 불어댄다. 최후의 방한 수단으로 넥 워머를 꺼내 둘렀다. 상당히 효과가 있다. 다만 날이 너무 추운 탓에 넥 워머 안쪽으로 입김이 응결되어 물기가 계속 찼다.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를 지난다. 시위대의 플래카드가 늘어선 정문 앞에는 건장한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내가 사진을 찍자 다가와 제지를 한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내가 모르는 뭔가 민감한 상황이 있겠지, 이해하기로 했다.


오른쪽 사진에 검게 보이는 건장한 사내들이 사진찍는 나를 경계하였다.


추워도 너무 춥다. 결국 AT센터 안으로 잠시 피신했다. 수없이 지나다녔으면서도 들어와 본 건 처음이다. 건물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었다.


AT센터는 쉽게 말해 '농산물 코엑스'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입주해 있고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컨벤션 센터를 갖췄다. 코스튬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행사장을 자주 이용하는 걸 오가며 보았다.



AT센터 진입 외에도 이 길을 걷는 동안에 한 가지 소득이 더 있었다. 양재천을 건너는 다리의 이름이 '영동 1교'라는 걸 처음 알았다.


천천히 걸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마련이다. 빠른 속도는 그 편리함만큼 놓치는 것도 많다. 그래서 시인 김광규는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에서 이렇게 노래했던 것이다.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장수나 생선장수는 보지 못하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 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구나

너의 눈은 빨라지고

너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

걷거나 뛰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남들이 보내는 젊은 나이를 너는

시속 60km 이상으로 지나가고 있구나


- 김광규, '젊은 운전자에게', 부분 -





양재역이다. 양재는 지하철에 앞서 역원제의 역(驛)이 있던 교통의 요지다. 이 근방을 '말죽거리'라 부른 것도 한양으로 들어서거나 벗어나는 길에 말에게 죽을 쑤어 먹인 데서 비롯됐다.


말죽거리처럼 옛 지명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예컨대 종로의 '피맛골'은 '말을 피한다'는 뜻이다. 종로에 말을 탄 고관의 행차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엎드려 예를 표하기가 귀찮아 뒷길로 피해 다녔다. 그래서 피맛골에는 진작부터 서민 대상의 술집, 국밥집이 자리잡았다.



양재역에서 강남역 방향으로 내려오다 처음 만나는 네거리가 '뱅뱅사거리'다. 1983년에 지어진 4층짜리 뱅뱅 사옥이 당시에는 이 근방의 랜드마크였다. (이 건물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러고 보면 강남의 개발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내가 서초동으로 이사 온 1986년 당시 서초동은 '꽃마을'이라고 불렸다. 서초역 주변엔 꽃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비닐하우스가 빼곡했다.


하긴, 벌써 30년 전의 얘기다. 한 세대가 흘렀다. 강남의 개발이 오래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오래된 모양이다.


뱅뱅사거리의 모습이다. 차들이 서 있는 대각선 위치에 뱅뱅 사옥이 있다.


강남역, 신논현역, 논현역, 신사역을 지나 한남대교에 이르렀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이곳에서 강남과 강북을 잇는 배가 오갔다.(북쪽 나루터가 '한강진'이다.) 한남대교의 옛 이름이 '제3 한강교'인데, 만약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면 그도 나만큼 오래된 사람이다.



한남대교를 건너는 동안에는 불어 닥치는 강바람을 속수무책으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강 건너 남산타워가 나의 위치를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어 위안이 된다. 남산에서 서울역은 지척이다.



이태원 주택가 언덕의 교회 건물과 이슬람 사원 건물을 일부러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 본다.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 이후 국제사회의 주된 갈등을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권 간의 충돌로 예상했다. 2001년에 터진 9‧11 사태를 비롯,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사태의 배경에도 종교적 대립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수염을 기르고 지팡이를 짚은 인격신의 이미지가 아니라 신의 '본질적인 가르침'에 집중한다면 지구상 주요 종교들은 다툴 일이 없다. 크리스트교의 '사랑'과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은 같은 개념이다. '이슬람'이라는 말에 포함된 평화와 예수님이 강조했던 평화가 다른 뜻이 아니다.


결국 종교를 내세운 분쟁에서 신은 다툼의 근원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아바타'일 뿐이다. 교회와 이슬람의 공존이 풍경 사진만이 아니려면, 무엇보다 '신의 뜻'과 '나의 뜻'을 나누어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남대교를 건너 '대사관로'를 따라 이태원으로 올라간다. 길의 이름처럼 순천향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근방에 외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대사관로의 끝은 이태원 번화가와 연결된다. 어지간한 외국 음식들은 이태원에서 거의 다 맛볼 수 있다. 배도 고프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여행을 마무리하기 전에 김이 빠질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며 용산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이태원 거리의 끝자락을 지나다가 기가 막힌 우연에 걸음을 멈췄다. 평화의 소녀상이다. 부산에서 걸어 올라오던 첫날, '의미로서의 여행'에 출발점이 되었던 계기가 일본 영사관 앞의 소녀상이었다. 그런데 대장정을 마무리하기 직전 그 소녀를 다시 만난 것이다.



용산의 소녀상은 2017년 8월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길을 오가는 동안 한 번도 소녀상을 본 기억이 없다. 김광규 시인이 탄식했던 '젊은 운전자'가 바로 나였다. 타인의 한(恨)도, 시대의 모순도 외면한 채 나는 그저 시속 60km로 지나다녔다.


말하자면 이번 여행은 평화의 소녀상에서 시작해 평화의 소녀상으로 끝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속도, 관찰, 연대, 관심... 정리되지 않은 낱말들이 어지러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태원 거리를 벗어나 전쟁기념관 앞을 지나면 삼각지다. 옛날에는 이곳에 고가차도와 로터리가 있었다.(여기서 배호의 명곡 '돌아가는 삼각지'가 나왔다.) 삼각지에서 서울역까지는 2km 거리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식사로 삼각지 근처 식당의 수제 햄버거를 택했다. 햄버거의 스타일이나 담아 내어 오는 식판은 주변에 있는 미군부대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서울역으로 향한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이제 30분 정도면 이 기나긴 여정도 마무리될 것이다.



4호선 숙대입구역을 지났다. 정작 여행의 종착점이 다가오자 조금 섭섭한 느낌이 든다. 뭔가 더 겪을 것이 있고 생각할 만한 것이 있었는데 놓치지는 않았던가 싶은 아쉬움이다.


누군가 내게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점점 쪼그라드는 인생의 지평을 넓히고 싶어서'라고 답하겠다. 생물학적 노화나 삶의 노화는 양상이 똑같다. 그럴 때 한 번씩 나를 내던지는 건 '안티 에이징'의 방편이다.



드디어 서울역 코앞까지 왔다. 건물 모퉁이를 돌면 서울역 광장이 나타날 것이다. 어떤 기분이 들까? 마치 소개팅 장소를 향하는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다



'역-울-서' 순으로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 저곳에서 서울을 떠났고, 부산역에서 되짚어 올라오기까지 꼬박 열 엿새가 걸렸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온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고 대단한 의미를 부여했던 도전도 아니었다. 그런데 서울역 앞에 서자 이유를 알지 못할, 스스로도 말로써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이 복잡한 감정을 어떤 단어들로 포착할 수 있을까 궁리해 본다.


'서러움'일까? 발바닥과 발목의 고통은 정말 심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의 순간 하나하나가 덩어리처럼 뭉쳐져 있다가, 도착한 순간 서럽게 터져버렸던 것도 같다.


'뿌듯함'일까? 서울역이라는 '장소'는 그대로였지만 내게 그 '장소성'은 완전히 달라졌다. 거기에는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 혹은 성취감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허무함'일까? 보름 넘게 힘을 짜 냈던 건 자북(磁北) 역할을 하던 서울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극점에 도달하고 만 순간, 더 이상 힘을 짜 낼 이유와 목적이 사라진 공백에 잠시 당황했던 건 아닐까.



지그시 서울역을 둘러보다 이제 시상대에 서듯, '서울역' 간판이 잘 보이는 곳 앞에서 종주의 기쁨을 담아 본다.



출발하던 날, 아무도 모를 화강암 틈새에 아주 작은 글씨로 '김정환 2018. 12. 12. 서울→부산'이라 썼다. 이제 그 옆에 무사히 돌아왔음을 알린다. '12. 27. 부산→서울 도착!' 수성펜이기에 곧 지워지고 말 것이지만 여행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내 나름의 의식이었다.


빨간 글씨로 출발하던 날, 파란 글씨로 도착하던 날을 적었다.


이대로 서울역을 벗어나려니 서운하다. 괜시리 역사 안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떠나는 KTX를 멀찌감치서 바라본다.



서울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어 본다. 출발하던 날 부산역 앞에서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면 두 얼굴이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르다.


왼쪽이 출발하던 날 부산역 앞에서, 오른쪽이 도착 후 서울역에서 찍은 사진이다.




목표한 여정은 끝났으나 기왕 영남대로가 한양 도성에서 동래읍성까지니 도성의 관문인 숭례문까지는 걸어 보기로 한다.


도로변에 '조선통신사의 길'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통신사가 오가던 길이 바로 영남대로다. 표지석은 2007년에 세워졌다는데 그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다가 영남대로를 걸어 숭례문에 입성하려는 이 순간에야 눈에 띈다.



해가 지고 있다. 숭례문 앞에 선다. 나처럼 영남대로를 걸어 올라와 숭례문을 마주 했을 수많은 조상들의 희열, 감동, 혹은 한을 상상해 본다.



숭례문을 끝으로 기나긴 장정을 마무리한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갈 것이다. 교통수단으로 오염(?)되기 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긴다. 정직하게 천리길을 걸어 온 사진 속 얼굴엔 얼핏 '구체성'이 비치는 듯도 하다.


추상과 구체의 협업, 그 보름간의 기록을 마치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5일차 : 경기 용인 김량장에서 판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