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금 여기

마음에 물 주기

by 어슴푸레

2023년 11월 30일. 약속된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조금은 홀가분하게 도서관을 찾았다. 책두레로 신청한 책 세 권을 받아 들으며 깜짝 놀랐다. 회사를 나오면 매일같이 오리라 결심했던 도서관을 맙소사! 단 한 번도 오지 못한 거였다. 못 온 건지 안 온 건지 알 수 없게 9개월의 시간이 꽉 차게 흘러 있었다. 올초 계획한 것들을 얼마나 실행했나 체크해 보니 거의 낙제였다.


- 1일 1회 운동은 오로지 숨쉬기 운동만.
- 주 1회 독서는 종류 무관 0권.
- 화~금, 1시간 이상 아이들과의 도서관 독서 0회.
- 1일 1편 소논문 읽고 요약 0회.
- 다시 피아노 배우기 0회.
- 오전/오후, 주중/주말 단위의 스케줄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행방불명.
- 금 1회, 주말 1회 외식은 시도 때도 없이 +α.
- 1일 1편 글쓰기는 10월에야 겨우.

지난 주말, 경신 샘과 선아 샘을 만났다. 광화문역에서 내려 1171번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데 차창 밖으로 복원된 경복궁 월대가 보였다. 내외국인들이 그 위에서 한복을 입고 셀카봉을 들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서울의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때 현타가 왔다.


그동안 뭐 했니? 경복궁도 한 번 안 오고.


대체 뭐 하고 산 거니. 무섭게 또 내 자신을 몰아붙일 기미가 보이자 두 눈을 질끈 감았었다.


너무 그러지 마. 열심히 살았잖아.
그 많은 일을 다 했잖아.

그리고 생각했다.

남은 한 달만큼은 그동안 고생한 날 위해 쓰겠다고.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책 읽고, 좋은 글 쓰겠다고.

뻐쩍뻐쩍 메마른 가슴에 나의 방식으로 물을 주겠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