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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Dec 10. 2023

호빵을 쪘다


  찐빵 1개에 1000원.


  장을 보고 출출해 시장 초입의 왕만두 가게 앞에 섰다. 눈을 의심케 하는 찐빵값에 가격표를 재차 확인했다. 찐빵, 왕만두 동일하게 개당 천 원이었다. 세상에, 찐빵 1개에 1000원인 시대를 살고 있다니. 아무리 물가가 미쳤대도 몇 달 에 200원이 또 올랐다. 이젠 찐빵도 못 사 먹겠구나. 기분이 그랬다.


  이불을 덮어쓰고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가끔 아버지가 3천원을 손에 쥐여 주셨다. 한겨울 추위에 배가 금방 꺼졌고 티브이에선 9시 뉴스가 한창이었다. 자주색 토끼털 잠바를 대충 입고 대문을 나오면 좁고 까만 골목이 눈앞에 나타났다. 꽁꽁 언 노면 위엔 요구르트색 연탄재가 군데군데 얼어붙어 퍼석퍼석 밟혔다. 호빵 심부름을 가는 건 무서웠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매끈매끈 호빵 생각에 두 말 않고 길을 나섰다.


  은하 슈퍼는 밤늦게까지 문을 열었다. 빨간 난로처럼 생긴 찜기엔 호빵이 개뿐이었다. 먹고 싶은 야채호빵은 늘 없었다. "호빵 다섯 개랑 귤 2천 원어치 주세요." "둘, 네, 여썻, 여덟, 열. 둘, 네, 여썻, 여덟, 열." 두 번을 세고 두 개를 덤으로 주셨다. 수경이 아빠는 까만 비닐봉지에 조심조심 호빵을 담았지만 닿은 면끼리 부딪쳐 집에 오면 조금씩 패어 있었다. 심부름한 수고로 성한 것은 내 차지였다. 살살살 불투명 종이를 떼어 두 손으로 잡고 호호 불며 먹는 맛. 야채호빵이면 더 좋았지만 팥호빵도 나쁘지 않았다. 한 입 물면 단맛이 입안에 아찔하게 퍼졌다. 입질 몇 번에 호빵은 입속으로 금세 사라졌다.


  1개에 200원 하던 호빵은 찐빵보다 쌌다. 복감 끊으러 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으면 영동 시장 골목에서 여러 번 양은 솥뚜껑이 열렸다. 구름처럼 너울거리는 김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꼴깍 침을 삼키고 엄마 오면 사 달래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바리바리 짐을 이고 오는 엄마에게 한 번도 찐빵 사 달라는 말을 못 했다. 엄마에게는 늘 왕복 버스비밖에 없었다.


  가끔 엄마는 네 개 들이 호빵을 두어 줄 사서 전기밥솥넣어 두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서로 그 호빵을 먹겠다고 밥솥을 열었다. 종이에 붙은 밥풀을 떼어 먹으면 호빵 영접 생각에 발이 절로 춤을 췄다. 거워 입천장이 다 벗겨져도 멈출 수 없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갔지만 호빵을 먹으면 속이 뜨끈히 채워졌다.


그 아찔한 단맛이 그리워 호빵을 쪘다.


겨울엔 역시 호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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