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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Dec 13. 2023

엄마는 왜 이렇게 굽신거려

  통화를 마치자마자 작은애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왜 이렇게 굽신거려?


  응? 내가? 굽신거린다고? 당황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자 아이가 다시 말했다. "엄마는 왜 전화만 오면 '아, 네네. 아. 네에. 그러셨군요.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 아닙니다. 네. 네네. 그럼 그때까지 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이러는 거야? 너무 그래 쫌."


  흠. 재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굽신거린다는 말이 딱히 틀린 것 같지 않다. 좋은 사람인 척, 다 이해하는 척, 마음 넓은 척. 척! 척! 척! 전화를 끊으면 바로 얼음 모드로 전환되니 아이로서는 '이 온도 차 무엇?' 할 수도 있었겠다. 굽신거림에는 비굴함이 기본값이고, 일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 없으며, 저쪽에서 사정상 늦게 주어도 주긴 준대니 이쪽에선 뭐가 됐든 생큐. 그러니 이 정도 낮춤이야 비굴 축에도 못 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은애의 눈엔 그런 내가 영 마뜩잖았나 보다. 왜 그렇게 굽신거리냐고 할 정도면.


  어쩌면 친절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을까. 통화 습관을 되짚어 보니 확실히 그랬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밴 습인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사람이 일정이라는 게 있는데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딜레이를 시켜 버리면 다른 일에 지장이 생깁니다."라는 건강한 이의 제기는 꿈도 못 꾼다는 것과, 남에겐 간 쓸개 다 내주듯 물러서고 참으면서도 그로 인해 곤란해질 스스로는 조금도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세련되게 말하는 법을 모르겠다. "그 부분은 좀 그러네요."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모르겠다. 굽신거림과는 다른, 순도 100%의 친절함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사십이 넘어도 모르겠는 게 너무 많다.


딸. 그래서 내 말투가 어떻다고? 어떡하라고?
핸드폰만 보고 있지 말고, 가르쳐 달라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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