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20분. 신호음이 여덟 번을 넘어간 후에야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늦게 받으실 분이 아닌데가 첫 번째,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안 좋지가 두 번째. 생각들이 샤샤삭 순식간에 달아났다.
"엄마, 저예요."
"응. 자느라 못 받았다."
"앗. 제가 괜히 일찍 전화드렸나 봐요. 주무시는데."
"아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래. 어제 좀 늦게 자기도 했고."
"아. 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 뭐……."
오늘은 엄마의 생신이다. 지난 주말에 내려갔어야 했는데, A형 독감이 다 낫지 않은 딸과 좋지 않은 내 컨디션을 핑계로 혹시 병을 옮길까 싶어 가질 않았다. 딸네 오면 주려고 싸 놓았던 먹을거리를 어제 택배로 받았다. 짐 부치러 가느라 몸살이 나신 건지 맘이 편치 않았다. 그냥 내려갈걸 그랬나. 언제나 뒤늦은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생신 축하드려요 엄마. 몸조리 잘하세요. 감사해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딸. 외할머니께 카톡 좀 드려. 오늘 생신이셔. 지난주에 못 내려갔는데 축하 인사라도 드려."
"네. 이따가요. 학교 다녀와서 할게요. 지금 나가야 해요."
"흠. 몇초나 걸린다고. 지금 보냄 안 돼?"
"이따 할게요."
현장 학습을 가려는 아들에게 똑같이 말했다.
"지금 나가야 되는데."
"엄마를 태어나게 해 주신 분이야. 외할머니 안 계셨음 너희도 없었어. 잠깐도 힘들어?"
"알았어요. 가면서 할게요."
"그래. 고맙다. 잘 다녀와."
후. 한숨이 나왔다. 이 섭섭함은 무엇 때문일까. 나의 죄스러움을 애먼 아이들에게 떠넘긴 건 아닌가. 바보. 자책은 또 자신을 향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좋았다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까. 축 가라앉은 엄마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돌아가신 외할아버의 목소리와 닮았다. 무형의 목소리조차 유전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엄마의 목소리로 잠깐 외할아버지 생각도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