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금 여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슴푸레 Dec 14. 2023

엄마의 목소리가 안 좋다

  오전 8시 20분. 신호음이 여덟 번을 넘어간 후에야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늦게 받으실 분이 아닌데가 첫 번째,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안 좋지가 두 번째. 생각들이 샤샤삭 순식간에 달아났다.


  "엄마, 저예요."

  "응. 자느라 못 받았다."

  "앗. 제가 괜히 일찍 전화드렸나 봐요. 주무시는데."

  "아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래. 어제 좀 늦게 자기도 했고."

  "아. 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 뭐……."


  오늘은 엄마의 생신이다. 지난 주말에 내려갔어야 했는데, A형 독감이 다 낫지 않은 딸과 좋지 않은 내 컨디션을 핑계로 혹시 병을 옮길까 싶어 가질 않았다. 딸네 오면 주려고 싸 놓았던 먹을거리를 어제 택배로 받았다.  부치러 가느라 몸살이 나신 건지 맘이 편치 않았다. 그냥 내려갈걸 그랬나. 언제나 뒤늦은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생신 축하드려요 엄마. 몸조리 잘하세요. 감사해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딸. 외할머니께 카톡 좀 드려. 오늘 생신이셔. 지난주에 못 내려갔는데 축하 인사라도 드려."

  "네. 이따가요. 학교 다녀와서 할게요. 지금 나가야 해요."

  "흠. 몇 초나 걸린다고. 지금 보냄 안 돼?"

  "이따 할게요."


  현장 학습을 가려는 아들에게 똑같이 말했다.


  "지금 나가야 되는데."

  "엄마를 태어나게 해 주신 분이야. 외할머니 안 계셨음 너희도 없었어. 잠깐도 힘들어?"

  "알았어요. 가면서 할게요."

  "그래. 고맙다. 잘 다녀와."


  후. 한숨이 나왔다. 이 섭섭함은 무엇 때문일까. 나의 죄스러움을 애먼 아이들에게 떠넘긴 건 아닌가. 바보. 자책은 또 자신을 향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좋았다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까. 축 가라앉은 엄마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돌아가신 외할아버의 목소리와 닮았다. 무형의 목소리조차 유전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엄마의 목소리로 잠깐 외할아버지 생각도 났다.


  오늘은 외가 식구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왜 이렇게 굽신거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