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惡性)'이란 말이 오만 데 붙는 게 싫다. 특정 대상에 가혹한 낙인을 찍는 것만 같아 듣기 거북하다. '악성 종양', '악성 피부병', '악성 뇌종양', '악성 림프종'처럼 주로 의학 분야에서 쓰이는데, 쉽게 전이되고 잘 제거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악성'의 극단에는 '양성(良性)'이 있다.
이러한 '악성'은 실생활에 슬금슬금 내려와 '잘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의 의미를 얻는다.'악성 변비', '악성 불면증'까지 쓰이더니 급기야 '악성 곱슬'까지 가 버렸다. '곱슬머리는 암적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드는 순간, 처음 '악성 곱슬'이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했다. 크롤링을 하니 2005년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에 대한 소개 기사와, 2006년 한국 미용실에 온 흑인 여성의 '악성 곱슬머리가 이렇게 변했어요'라는 매직 스트레이트 광고 언급 기사가 나왔다. 그제야 '악성 곱슬'이란 말에 그토록 불편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뭐랄까 '악성 곱슬'에는 '곱슬' 자체에 대한 부정과 '선성 직모(善性直毛)'만이 아름답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 있었다.
'고질 민원', '질 나쁜 소문', '유해 코드', '유해 앱', '유해 프로그램', '고이율 자금', '악의적 댓글', '악의적 리뷰', '악의적 게시물', '강성 팬….' 하나씩 대체해 본다. '악성'이 붙어 의미가 강조된 것인지, '악성' 자체가 나쁜 말이었던 것인지, '악성' 뒤에 오는 말의 의미적 속성 때문에 뜻이 바뀐 것인지. 이제는 볼수록 헷갈린다.
뭐가 됐든 '악성 곱슬'은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다. 나부터 '악성 곱슬' 대신 '센 곱슬', '강곱슬'을 써야겠다. 계속 주의해서 쓰다 보면 누군가도 쓰겠지. 그러다 생명력을 얻겠지. 그러면 뉴스 기사에서도 보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