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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Jan 11. 2024

뭣이 중헌디

엄마, 또 피 나?
엄마한테서 죽은 물고기 냄새가 나.


  딸애가 팔자 눈썹을 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무리 샤워를 하고 향수를 뿌려도 아이의 타고난 후각을 속일 수 없다. 무리만 하면 부정 출혈이다. 어, 왜 이러지 했던 게 벌써 세 차례. 생리가 끝나고 일주일도 안 지나 생리만큼의 피를 쏟았다. 쉬쉬해도 그때마다 귀신같이 알았다. 엄마 아직도 생리해? 아직도 피 나? 했다. 며칠 전전긍긍하다 폭풍 검색을 했다. 벌써 갱년긴가 하다가. 에이 무슨! 하다가. 엄마의 이른 폐경이 떠올라 유전인가 하다가. 암인가 하다가. 자궁에 문제가 생겼나 하다가. 수술해야 하나 하다가. 상식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생리하는 게 말이 되나 하다가. 대학 병원을 알아봐야 하나 하다가. 밤을 새웠다.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랐고, 이런 증상을 '부정 출혈'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앞이 터진 체크무늬 치마로 갈아입고 진료 의자에 앉았다. 길쭉한 탐촉자가 아래로 쑥 들어갔다. 차갑고 불편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환자분 왼쪽 화면 보세요." 의사가 건조하게 말했다. 흰 부채꼴 중앙에 컴컴한 동굴 같은 자궁이 보였다. 자궁 경부 좌우의 덩어리진 곳에 자를 대자 2cm, 1.5cm가 나왔다. "걱정할 위치는 아니고요, 악성 근종도 아니고요, 더 커지지 않나 정기적으로 지켜보면 됩니다." 의사가 초음파를 보며 진단했다. 이후 "혹시 스튜어디세요? 장기 비행을 하면 그런 경우가 있어요. 잠을 못 주무시나요? 무리하셨나요?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나요? 지혈제 처방해 드릴 테니 드시고 출혈이 없으면 끊으세요. 앞으로도 그러면 호르몬제를 먹거나 해서 몸을 정상 상태로 돌려 놓는 방법을 쓰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어졌다.


  그러고도 두 달에 한 번꼴로 생리 후 하혈을 했다. 보름 이상 피를 쏟으니 빈혈이 다시 왔다. 다른 것보다 피 냄새가 제일 싫었다. 앉았다 일어나면 아래로 왈칵 쏟아지는 느낌과 축축함. 순간 공기중으로 퍼지는 비릿한 냄새에 자동으로 인상이 써졌다. 출장을 가서도 그랬다. 넉넉히 챙기지 않은 패드에 신경이 곤두섰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2차 병원에 예약을 했다.


  비슷한 말을 들었다. 난소 두 쪽 깨끗하고, 근종은 양성이니 제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자궁 내막의 폴립(용종) 때문에 피가 나는 걸 수 있으니 다음 생리 시작 직후 병원에 전화하면 자궁경 수술 날짜를 잡아 주겠다 했다. 온 김에 자궁 경부암 검사도 하쟀다. 질에 뭔가를 넣고 돌려 채취하는 것은 매번 겪어도 수치스럽다. 별수 없는 동물이라는 생각에 슬픔이 잠깐 스친다. 이만하길 다행이지는 언제나 그다음이다. 부끄러움은 원초적으로, 안도는 한숨을 돌리고서야 고차원적으로 찾아온다.


  무리를 하면 몸의 가장 약한 곳으로 병이 온다고 했다. 목 옆에 멍울이 잡힐 땐 여지없이 임파선이 부었대고, 몇날 며칠 피를 쏟으면 자궁 내막이 문제랜다.


뭣이 중헌디.


멍청한 주인에게 몸이 한 번씩 신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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